우유부단함의 예찬
선택하는 내가 있다는 걸로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서양 사상 때문인지,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선택을 강요하고 그것을 지켜주려 한다.
어릴 적부터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을 물어보고 그들의 취향을 지켜주는 것이 어른의 모습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가 어렸을 적 유치원 공개 수업에 들어갔던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돌아가면서 아이들에게 한 사람씩 질문을 하고 답을 물어본다. 질문 중에 하나가, 네가 좋아하는 야구팀이 뭐냐는 것이었다. 시카고에는 시카고 컵스와 시카고 삭스라는 두 개의 프로야구팀이 있는데 둘 중에 어떤 팀을 좋아하는지.. 질문은 '좋아하는 야구팀이 있냐?'가 아닌 '좋아하는 야구팀이 어떤 팀이냐?'였다.
난 유학 와서 을 온 신분이었기에 여기 프로야구팀에는 그리 관심 없었고 그로 인해 아이도 평소에 프로야구에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어떤 대답이 나올까 유심히 귀 기울여 들어보았다. 굳이 영향을 따지자면 그 당시 살던 곳이 삭스 경기장 근처였기에 삭스를 더 많이 들어봤을 테니 삭스라 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과 함께..
하지만,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아이는 컵스를 좋아한다고 했고.. 지금도 그 아이의 야구팀은 컵스가 되었다.
내가 어릴 적 '앙케트'라 불렸던.. 번호가 매겨진 많은 질문들에 여러 애들이 자신의 대답을 적어놓은 질문 중에 내가 많이 고민했던 '네가 좋아하는 색이 뭐야?'는 질문.. 좋아하는 색이 있는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내게는 색이라는 것이 그리 의미가 없었고 그때그때 기분에 달라지는 좋아하는 색을 어떻게 하나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며 고민했던.. 그래도 유별나 보이지 않으려 '검정'이라 적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뒤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검정'이란 말을 하게 되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을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면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지만, 준비되지 않은 선택은 자신을 옭아맨다. 때론 좀 늦더라도 신중하게 선택을 위해 '생각중'인 단계도 만들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의미 없이 선택을 해도 선택을 하는 순간 자신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와 나중에 자신의 선택을 바꾸려 할 때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신중함이 (부정적인 말로 우유부단함)이 인정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미국의 즉흥성, 다양성이 어릴 적 이런 선택의 강요에서 시작되어 진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