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미국 유학을 와서 외로움에 지쳐 사람을 찾고 있을 때 한 외국인을 외부 세미나에서 우연히 만났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이 다니던 교회를 따라다닌 적이 있었다. 영어로 된 예배, 영어로 된 대화..
같이 교외로 수련회 같은 곳을 갔었고, 그곳에서는 명상의 시간이 있었고 종교에 대한,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너에게 교회는 무엇이냐?'는 이야기를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야기했는데,
나는 교회는 '사랑'을 가르쳐 주는 곳인 것 같단 이야기를 했다. 이방인이었던 나는 평소 잘 쓰거나 듣지 않는 말들이었는데 그곳의 사람들의 말들에 수시로 '사랑'이란 말들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내가 알아들을수 있었던 단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LOVE'란 말을 참 많이 이야기 한단 생각을 했었다. 그 대상이 주로 절대자에 대한, 혹은 절대자에 의한 이야기들이지만,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을 배워서, 그 대상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결국은 우리가 이성에게 이야기하는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마도..
절대자에게 하는 단어를 하찮은 인간에게 해서 이렇게 인간의 사랑이 힘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먹고 갈래?"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내겐 더 강하게 남았었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란 말이..
20대에는 너무나도 깊게 유지태에게 마음이 가다가,
30대가 되니 이영애가 이해되고,
40대가 되니 '아이고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든다.
최재천 교수가 인간이 종교에 빠지는 이유로 마이클 셔머라는 사람이 인간은 두뇌에 믿음엔진(Belief engine)이라는 것이 있어서 무언가 믿을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안정을 찾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데.. 상대방에게서 절대적인 사랑을 찾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드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인간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결국은 그래서.. 그렇게.. 사람들이 종교를 찾아가는 이유일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 놓으면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았다는 믿음으로 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그럼 난..
지금부터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 건가?
갑자기 이 질문이 떠오르는 건..
나는 지금까지 인간의 절대적인 사랑으로 나의 두뇌의 믿음엔진을 만족시켜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했나 보다.
어릴 적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 같았던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방황하는 나를 본다..
어릴적 나의 부모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어릴적 내게 절대자로 보였던 그들도 지금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