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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May 14. 2021

애착 이불

어른도 애착 이불같은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얼마 전 한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기사의 주인공은 대만의 한 젊은 남성이었다. 그는 연애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35년 동안 갖고 있던 애착 이불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 친구는 그 이불을 보더니 정색을 하며 이제 그만 버리라고 요구했단다.  남자는 그런 여자 친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네티즌들에게 자신이 이상한 것인지 물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대만의 네티즌들은 '애인이 너무했다. 그래도 남자 친구가 가장 아끼는 것인데.',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애착이불이냐. 여자 친구 말이 맞다.' 며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내가 놀란 이유는 기사 속의 남자 주인공과 35년 간 동고동락했다는 애착 이불 사진 때문이었다. 이불 모양이 딱 우리 집 작은 별, SH의 이불을 보는 것 같았다. 흔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네모 반듯하고 폭신한 이불이 아닌, 갈기갈기 찢기고 실오라기가 다 풀린 모양의 이불. 기사 속의 남자는 35년이었지만 SH의 애착 이불은 약 5년 만에 사진처럼 애처로운 모양이 되었다. 그만큼 아이의 이불 사랑은 격하기 그지없었다.


SH가 애착 이불과 첫 만남을 가진 것은 생후 6개월이 되던 때였다. 날은 점점 더워졌고 얇고 가벼운 이불이 필요했다. 나는 아이가 잠을 잘 때 배에 살짝 덮어줄 요량으로 스*들 블랭킷 두 장을 구매했다. 한 장은 흰색 바탕에 민트색 기린과 회색 코끼리가 마주 보고 있는 그림 패턴이, 또 다른 한 장은 노란색 바탕에 지그재그 줄무늬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후 이불 두 장으로 여름뿐만 아니라 가을, 겨울 그리고 다음 해 봄까지 여러 계절을 잘 보냈다. 그런데 SH가 이불에 애착을 보이기 시작한 건 네 살 무렵부터였다. 아이는 어린이 집을 다니게 되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두 개의 이불 중 하나를 가방에 꼭 챙기고 등원했다. SH와 애착 관계를 맺게 된 이불은 바로 민트색 기린+회색 코끼리 무늬였다.  


나의 학창 시절, 책가방 속에 도시락은 빼먹지 않았던 것처럼 아이는 어린이 집 가방 안에 항상 이불을 싸들고 다녔다. 아이는 심리적인 허기가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던 걸까. 네 살을 지나 다섯 살 한 해를 다 보내도록 어린이 집엔 이불이 늘 애인처럼 동행했다. 당시 어린이 집 친구들은 절반 이상이 SH보다 생일이 빠른 여자 아이들이었다. 선생님 말씀에 SH가 자신의 이불을 질질 흘리고 다니면 누나(?)같은 여자 친구들이 “SH야, 이불 떨어뜨렸어.”하면서 챙겨주었다고 한다. SH는 어린이 집에서 ‘이불 갖고 오는 애’, ‘이불이 없으면 안 되는 애’로 통했다.


문제는 SH가 어디서나 분신처럼 갖고 다니던 애착 이불을 절대 빨지 못하게 하는 데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냄새 때문이었다. 아이가 기관에 가지 않는 주말이면 나는 이불을 빨아야겠다 싶어 세탁을 했다. 그런데 SH는 빨래 건조대에 걸린 자신의 이불을 발견하곤 휙 걷더니, 곧바로 코에 갖다 댔다.


3, 2, 1…


"으앙!! 냄새가 이상해!!! 으앙…!!!!"  


아이는 냄새가 이상하다며 울었다. 세제 냄새가 강해서 그런가싶어 이후에 물로만 손빨래를 해줘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특유의 냄새가 이불에서 사라지면 목놓아 울어댔다. 그 뒤로 나는 아이의 애착 이불을 세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불의 몰골은 몇 년 사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본래 흰색 바탕으로 태어난 이불은 아이의 손때가 묻고 집과 기관에서 끌려 다니며 점차 잿빛으로 변해 갔다. 이불이 낡아가니 아이의 힘으로도 금세 잘 찢어졌다. 아이의 온몸을 덮을 만큼 넉넉히 컸던 이불은 두 쪽이 되고, 네 쪽이 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분열해서 이제는 조각조각 찢겨졌다. SH는 찢겨나간 이불 조각들을 용케 묶어 밧줄처럼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가끔씩 집에 오시는 손님들이 거실이나 방에 떨어져 있는 아이의 애착 이불을 보시고는 이런 뉘앙스로 물으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꼬질꼬질, 먼지 묻은 이불 뭉치를 숨기고 싶었다. 누가 보든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이불.


나는 꾀를 내어 같은 회사 같은 디자인의 이불을 또 한 장 준비도 해봤다. 애착 이불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으니. 하지만 같은 제품의 새 이불을 아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유사품이나 불법 복제품도 아닌 똑같은 이불인데도 어찌나 의심의 눈초리로 보던지. 새 이불은 자기가 좋아하는 냄새가 나지 않아서 싫단다. 아이의 온리 원, 이불 사랑이 참 유별나다 싶었다. 하지만 잠들 때 그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자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짠하면서도 빙그레 웃음이 났다.


나에게 아이가 소중하듯 아이가 소중해하는 물건 역시 함부로 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어린이 집에서 엄마가 보고 싶은 순간, 아이는 애착 이불을 손에 더 꼭 쥐었을 테다.


자기보다 키도 덩치도 큰 형이랑 싸우다 불리해질 때, 엄마 아빠에게 야단맞았을 때, 아이는 쏜살같이 애착 이불을 찾아 품에 안고 냄새를 맡으며 훌쩍인다. 이럴 때 이불은 생채기 난 아이의 마음을 살살 어루만져 주었을 테다.


또 함께 자는 형아 EH 왈,


“엄마, SH가 잠을 자다가 깨면 두리번거리다 이불을 찾아. 그리고 냄새 맡고 다시 잔다??”

 

아이는 나름대로 까만 밤의 공포를 이불로 이겨냈을 테다. 자다가 엄마, 아빠 방으로 뛰어들어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생의 안정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애착 이불은 아이에겐 잠시나마 마음 누일 곳이 된다. 생각해보면 어른에게도 애착 이불 같은 그 무언가가 하나씩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어른이 되어도 불안하거나 두려운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어른의 가슴이 허전한 이유는 어쩌면 사람, 사회, 세상의 눈치를 느라 자신만의 애착 이불 만들기를 애써 미뤄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로 일곱 살이 된 SH는 수년 째 품고 다니던 애착 이불을 여전히 좋아한다. 달라진 것은 더 이상 밖에는 이불을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어린이 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간 첫날, 쿨하게 애착 이불을 두고 집을 나섰다. 혹시나 갖고 간다고 떼쓸까 봐 조마조마했던 내 마음도 안도의 한 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적어도 성인이 된 이후에 애착 이불을 떼지 못해 신문에 날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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