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함성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엄마들이 쪼르르, 담장 옆에 서서 사진 찍고 있는데? 운동장이 알록달록하네!"
남편도 신기했는지 출근길에 전화까지 하며 현장 상황을 중계했다.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나의 아이들은 색을 맞춘 반 티셔츠를 입고서 생소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입학 후 처음 맞이한 체육대회였을 테니.
현장에 가지 못한 나는 이렇게나마 그림을 그려봤다. 체육대회에 학부모 참관은 공식적으로 허락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여야 하는 수고는 덜었지만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남았다.
3년 만인가. 운동장에 만국기가 펄럭이기까지. 코로나 시국 내내, 실외 체육 활동이 거의 없어서 학교 운동장은 늘 조용했다.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까지는 3분 거리. 너른 운동장에서 언제쯤 뛰어놀 수 있으려나, 오며 가며 학교 담장 너머를 수도 없이 바라보았는데.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으니 사방에 가득한 함성소리가 그저 반갑기만 했다.
마이크 볼륨을 타고 사회자 분의 우렁차고도 매끄러운 진행 소리가 집 안까지 들렸다.
"청팀!"
"와아아아아!"
"백팀!"
"와아아아아!"
사회자가 '청팀', '백팀'을 각각 외치자, '와아아아아'하는 함성 소리가 곧바로 울려 퍼졌다. 등교하기 전에 두 아이는 모두 '청팀'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오랜만에 듣는 정겨운 단어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팀(team)'이 생겼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하고도 힘이 나는 일일까.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3년 동안 기관 생활을 한 어린아이들을 '코로나 키즈'라고 부른다. 온 세상이 바이러스와 싸우는 내내, 아이들은 오랜 시간 학교나 유치원,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다. 상황이 조금 나아져 기관을 다니고 있어도 마스크를 꼭 써야만 했으니 상대방의 입모양이나 표정을 관찰할 기회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영유아 시기의 아이들 중 언어나 정서 발달이 지연된 사례가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큰 아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한 학기를 거의 등교하지 못했으니 딱 코로나 키즈다. 때를 놓쳐 부족해진 학습량이 있다면 그것은 혼자서라도 얼마든지 보강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운동장이라는 텅 빈 공간을 거리낌 없이 누비기란 또래 친구들의 도움 없인 불가능하다. 그러니 체육대회 자체가 열린 것만으로도 소중했다.
아이들은 그동안 집과 교실만 오가던 반쪽 짜리 학교 생활에서, 이제는 하나의 팀이 되어 운동장까지 활보하는 온전한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달리고, 공을 굴리며, 함성을 내지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신이 날까. 대회가 끝날 때쯤엔 서로를 더 알게 되어, 먼지를 뒤집어쓴 얼굴이라도 경계없이 웃을 것이다.
마스크에 가려져 있던 예쁜 입들이 온 마음을 끌어모아 만든 함성. '와아아아' 하며 집 안까지 달려든 소리는 이제 내 마음까지 힘껏 안아준다. 한동안 듣지 못한 함성에 누군가는 그 시끄러움을 참느라 고생이었겠지만. 많은 이웃들은 마음의 안도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는, 오후까지 이어지는 아이들의 함성이 그저 단순히,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내뿜어진 소리로만 들리진 않았다.
문장도, 단어도 되지 못한 고작 소리일 뿐인데도 이렇게 해석되어 들리는 건 무슨 기적인가.
'이젠 괜찮아요'
'그동안 고생했어요'
'좀 더 멀리 가봐요'
같은,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가 아이들의 외침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유난히 파란 하늘이 보였다. 3년의 시간이 열구름처럼, 이제는 지나갔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어떠한 상황에도 자신을 긍정해 달라고, '삶'이란 발신자가 내게 말했다. 온통 푸른빛을 풀어놓은 오월의 하늘은 글씨 없는 편지 같았다.
삶이 내게 부쳐준, 오랜 시간 기다리던 답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