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편씩 영상을 만들어 지역구 유튜브 채널에 게시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 이야기를 소재로 리포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익숙한 동네도 촬영과 편집이라는 그릇 안에 잘 담으면 낯설고 새로운 공간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영상을 클릭하는 이들에게도 비슷한 감정이 공유되기를 바라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거나 큰 돈을 버는 일은 아닐지라도, 내 손으로 무언가 빚어내는 일이 좋다. 거창하게 말하면 창작의 기쁨일테고 지금의 내게는 반복되는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하나의 장치이기도 하다.
저녁 시간, 아이들이 학원에 가 있는 동안 카메라와 휴대폰, 작은 삼각대 하나만 챙겨들고 근처 공원으로 갔다. 이번 달 영상은 낡은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전망대, '오션스코프'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일몰 명소이지만 아직 덜 알려져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은 드물었다. 나 역시 이번 영상을 준비하며 이런 곳이 근방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일몰 시간보다 조금 일찍 전망대에 도착했다. 바닷 바람이 시원했다. 전망대 안과 밖을 오가며 천천히 촬영을 시작했다. 전망대는 컨테이너 박스 3개가 각각 10도, 30도, 50도 각도로 서로 다르게 기울어진 모습이었다. 한 때는 선박을 오르내리던,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들이라고 한다. 전망대 안으로 들어가 높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니 철제 프레임 안으로 지는 해와 바다, 멀리 인천대교가 보였다. 익숙한 풍경들이었지만 전망대를 통해 바라보니 새로웠다. 동시에 머릿 속으로는 영상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내레이션은 어떻게 쓸지, 목소리 녹음은 할지 말지, 어떤 분위기의 음악을 넣을지. 자잘한 고민과 선택의 과정들을 통과해야 완성되는 영상 한 편은 언제나 삶을 닮아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지 올해로 정확히 십 년이 되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짧았던 직장생활이다. 한창 일할 때의 나는 결혼한 동생이 두고 간, 카키색 야상 점퍼만 매일같이 입었던 기억이 난다. 아침마다 제대로 꾸미고 다닐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출퇴근 길이면 미래의 내 모습을 자주 상상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어디든 촬영을 다닐만큼 건강하고, 모니터 앞에서 내 생각과 색깔이 담긴 영상을 만들고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 그것이 삼십 대 초반의 내가 꾸었던 꿈이다. 하지만 큰 아이를 낳을 무렵, 별 고민 없이 퇴사를 했다. 그 때 숙고하지 않고 쉽게 내린 결정 때문에 육아를 하는 내내 혼자서 속앓이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때늦은 고민들이 종종 마음을 술렁이게 했다.
작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갈만큼 자란 후에야 한동안 돌보지 못했던 꿈의 키도 자라게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기관에 있는 시간을 활용해 40분 거리에 있는 학원에서 수업을 들었다. 매일 두 시간씩 배우고 싶었던 편집 프로그램들을 원없이 다루어 보았다. 함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보다도 나는 나이가 많았다. 어떤 날은 선생님의 꾸지람 앞에서 나의 약점이 보이며 겸손해졌고, 또 어떤 날은 칭찬을 들으며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으로 직접 부딪히고 깨달아가며 나는 어린 학생으로 돌아간 듯 했다. 그리고 배우는 일의 즐거움을 오롯이 맛보았다.
작은 아이가 고열 때문에 아팠던 단 하루만 빼고 6개월 동안 날마다 배움의 시간을 이어갔다. 무언가 배운다는 것이 그 자체로 얼마나 마음을 부르게 하는 일인지. 배우는 일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지금'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도 된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방식은 다르지만 어찌됐든 직장 생활 당시 하던 일을 지금도 비슷하게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래서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꿈은 마음의 강물에 쉽게 빠지지 않는 것 같다. 어설프게 놓은 내 삶의 징검다리를 기가 막히게 건너와 지금도 내 곁에 있다. 흘려보내고 싶고 슬그머니 놓아주고 싶어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꿈의 속성일까.
뒤늦게나마 무언가 배우는 일에 몰입해보며 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꿈을 찾았다는 것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고 싶은 어떤 분야에 눈을 떴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배움의 연장선을 조금씩 이어가다가 어느 날 문득 나도 모르게 다다르는 것. 그것이 꿈을 이룬다는 게 아닐지. 직업을 갖는다는 것도 일차적으론 먹고 사는 수단이 되지만, 제대로 감당하려면 계속 배워야한다. 일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좋든 싫든 흔들리고 부대끼며 한 뼘씩 자라가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꿈이란 막대사탕처럼 부모가 아이에게 쉽사리 쥐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면에서 강하고 약한지, 스스로 자신을 탐구하고 배우는 과정이 전제될 때 제대로 보이는 것. 그런 게 꿈일 것이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 꿈을 이루는 삶의 모양도 저마다 달라야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문득 "나는 꿈이 열 두 가지야."라고 자주 이야기하는 큰 아이가 궁금해진다. 무슨 꿈이 연필 한 다스만큼 많아? 라고 반문한 적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보지 못했다. 시간을 내어 아이의 꿈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그리고 엄마도 꿈이 있다고, 여전히 꿈을 꾸고 다가가려 노력한다고 말해줘야겠다. 아이도 이런 나를, 나의 꿈 이야기를 궁금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