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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Jun 19. 2023

다리 건너 도서관

이웃 엄마들과 이야기할 때 동네를 벗어난다는 말을 '다리를 건넌다'라고 표현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자가용이든 버스든 교량을 건너야만 다른 동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나 역시 아이들을 태우고 버겁게 운전하다가도 이 다리 위를 건널 때면 금세 나들이 하는 기분으로 바뀐다. 다리 아래로 끝없이 뻗은 천이 흐르고, 멀리 하늘과 구름도 속도감 있게 흐른다.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방향을 감각하고 속도를 체감하는 일이 필요해서 운전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아이들이 다리 건너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도서관이다. 걸어갈 만한 거리에 동네 도서관이 두 곳이나 있다. 필요한 책이 근처에 있을 땐 가까운 곳의 도서관을 가지만 웬만하면 차를 타고 도서관에 간다. 잠깐이나마 먼 풍경을 바라볼 수 있고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싼 삶이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어 좋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도서관에 가는 일은 종종 힘이 부치기도 다. 오후 시간, 아이들과 도서관을 찾았다. 유월의 바깥공기는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고, 도로는 붐비는 차들로 빈틈이 없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는 차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뒷 좌석에서 앞 좌석으로 다람쥐처럼 넘어오고,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가 뒤로 빼며 장난질에 신이 난 작은 아이 때문에 동네 운전은 장거리 운전하듯 별안간에 피곤해진다. 엄마가 정신이 사나워서 운전을 못하겠어. 하고 말하자 아이는 슬그머니 뒷 좌석,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내 옆 자리에 앉아있는 형과 대화를 주고받다가 입씨름을 벌인다. 저녁 먹을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집에 있을 것을 괜히 나왔나.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도서관에 도착했다. 어린이 열람실의 문을 열자마자 향긋한 공기에 도로 위에서 쌓인 피로감이 씻긴다. 요즘 도서관에서는 향기가 난다. 그만큼 관리가 잘 되어 쾌적하다. 정확히 어떤 향인지 알 수 없었지만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향이었다. 이미 어느 대형 서점에서는 자신들의 기업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향을 만들어 디퓨저로 판매하고 있다. 실제로 그 서점을 찾으면 입구에서부터 특유의 시그니처 향을 맡을 수 있다.



이곳 도서관의 향기도 그런 디퓨저 향일지 궁금했지만 직원 분께 따로 묻지는 않았다. 종이로 만들어진 모든 책은 본래 나무의 향기를 품고, 그 나무는 숲의 향기를 품고 있을 테니. 숲 속의 어느 이름 모를 나무의 향이라고 대신 상상했다. 도서관 안에 계속 머물고 싶게 하는 향기, 나무가 있기에 태어날 수 있었던 책, 그 책들이 빽빽이 꽂힌 조용한 공간. 정말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저마다 다른 제목을 가진 책은 나와 아이들을 보자 제 이야기가 하고 싶어 입술을 달싹거리는 나무 한 그루 같고.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는 독서 통장을 만드느라 도서관 책 대출에 꽤 극성을 떨었다. 백 권씩 읽은 책이 누적될 때마다 아이들은 독서상과 함께 유치원 문방구에서 장난감 선물을 받았다. 어릴 때 제대로 보지 못한 그림책들을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일 만으로도 좋았는데 상과 선물까지 받는다니. 나는 아이들과 일심동체가 되어 도서관 책을 함께 읽고, 통장 기록하는 일에 열심이었다. 운전을 다시 배운 것도 아이들 책을 대출해 집까지 실어 나르기 위한 실제적인 이유가 컸다. 온 가족의 이름으로 최대 대출 권수를 꽉 채워 빌려온 책들은 거실 한편에 작은 산처럼 쌓였고, 육아에 고군분투하던 내겐 그것들이 한 때 비빌 언덕이 되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장바구니 한가득, 책을 꽉꽉 채워 돌아오자는 목표가 사라졌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독서 마라톤'이라는 학교 독후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나누어준 독후활동 노트 앞장에는 학년별 권장도서라는 것이 있다. 학기 초에는 이 권장 도서를 열심히 빌려다 주곤 했다. 그런데 대출 기한이 다 되도록 아이들은 그 책들을 잘 읽지 않았다.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할 책 이야기들이 박물관의 유물처럼 거실 책꽂이를 차지하고만 있었다. 나는 즉시 권장도서 빌리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고를 수 있는 권리와 재미를 오히려 내가 차단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엄연한 독자였다. 책을 고르는 순간은 자기 마음을 살피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무기력해진 내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햇살이 필요한지, 지친 마음을 뉘일 그늘이 필요한지. 화와 분노로 데어있는 마음이라면 그 불덩이를 식혀줄 부드러운 바람이 필요하고 미움과 상처의 얼룩은 그것을 씻겨줄 소낙비가 필요하다. 햇살과 그늘, 바람과 비 같은 이야기를 찾으러 나는 도서관에 간다. 타인이 쓴 책을 읽는 것이 어떻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될까. 이상하리만치 신비한 독서의 기쁨이다. 그러니 내 마음에 맞는 책을 고르는 시간이 내겐 숨을 고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아이들이 그런 책과 행복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엄마인 나는 도서관이라는 문턱만 함께 넘어준다.



아이들은 일단 자기들이 보고 싶은 학습 만화책부터 골랐다. 그리곤 각자 책을 품에 끼고선 푹신하고 넓은 소파 위에 몸을 던진다. 저래도 될까 싶을 만큼 아이들은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무엇이 웃기는지 주변을 의식하지 못한 채 이내 낄낄, 깔깔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들. 조용하지만 경직된 도서관은 아니라서 별다른 제재를 받진 않는다. 그래도 엄마인 나는 주변의 눈치부터 본다. 다행히 도서관 직원 분들 말고는 아이들이 없다. 언제 와도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보다 도서관을 관리하고 일하시는 어른들 수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아이들은 이 좋은 도서관을 놔두고, 다 어디로 갔을까.



나도 집에서 읽던 책을 꺼내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았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따로 책을 읽고 있는 우리.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어야만 했던 시절, 그때의 나는 지금의 이런 시간을 간절히 꿈꿨을 것이다. 그 시절로부터 한참을 걸어 나와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책을 고르고 읽는다. 책날개 너머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이 어린 탐험가들처럼 보였다. 지도처럼 책을 펼치고선 세상을 향해 걷기 시작한 탐험가들. 도서관에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 건너 도서관은 우리 만의 숲이다. 햇살과 그늘, 바람과 비가 어우러진 책들의 숲.



이 숲의 향기를 맡으러 오늘도 다리 건너 도서관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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