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 열어두기
"은호야, 더우면 이제 엄마 방으로 갈게. 혼자 누워있으면 시원해질 거야."
"아니야, 엄마. 조금만 더 있다가 방으로 가요."
아이는 외할머니 표 보라색 꽃무늬 이불을 몸 아래에 깔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시원해진다고. 아이 말대로 나도 따라 해보니 정말 이불 천에서 냉감이 느껴졌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다시 옆자리에 누웠다. 여름 내의를 입고 있어도 아이들은 요즘 잠자리에 들 때면 덥다 한다. 에어컨이 거실과 안방에는 있지만 아이들이 자는 방에는 없다. 작년 여름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이들이 자는 동안 방문을 활짝 열어두고 선풍기 바람을 약하게 틀어놓았던. 덮개를 씌워 넣어두었던 선풍기를 다시 꺼낼 시점이었다.
한 달 후면 시작될 아이들의 방학, 장기간 이어질 장마, 매년 더해져 가는 폭염의 수위. 익숙한 여름의 장면들이 선풍기 날개 돌듯 마음속을 빙글빙글 어지럽혔다. 올여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걱정과 염려의 그림자가 몸을 드리우려던 순간, 몸을 폴더폰처럼 접으며 일어났다.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억눌렸던 기분이 어느 정도 해소됨을 느꼈다. 감정은 몸의 지배를 받나 보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종일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굵은 실선을 만들고 있었다. 비가 오는 줄도 몰랐다. 문을 꼭 닫고는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만 기다렸으니. 노래 가사처럼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나와 같이 이 시간에도 서성이는 이웃들이 참 많구나. 건너편 아파트에는 불 켜진 집들이 몇 가구나 되는지 얼추 세어보며 생각했다. 빗방울에 어른거리는 아파트 불빛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타닥, 탁탁. 어지럽던 마음들이 빗소리 하나에 차분해진다. 집중할수록 듣기 좋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멜로디가 창문을 두드리는데도 그냥 잠들 뻔했구나. 빗소리도 내릴 때마다 조금씩 다른 리듬을 만드는 것 같다. 시간당 내리는 비의 양이 늘 다를 테니. 사람의 듣는 귀가 그만큼 예민하지 못해서 늘 똑같은 빗소리로 여기는 게 아닐까. 이런 상상을 하니 빗소리가 애틋해진다. 재생 불가능할, 단 한 번의 라이브 음악을 들을 때처럼.
창을 열어두니 아이들 방으로 물기를 머금은 밤공기가 계속 흘러들어왔다. 빗소리도, 비 냄새도 정말 좋구나. 말없이 마음의 자판을 두드리던 순간이었다.
"아, 빗소리가 너무 좋아. 비 냄새도 좋고 창문으로 보이는 장면이 너무 예뻐!"
큰아이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느낀 것을 아이도 동시에 느끼고, 그것을 그대로 말로 표현해 주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내 마음의 모양과 아이 마음의 모양이 두 개의 붕어빵처럼 똑같아진 순간. 전기가 통하듯 찌릿했다. 평소에는 그저 무덤덤한 남자아이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는데. 좋은 것을 좋다고, 예쁜 것을 예쁘다고 느끼고 말로 표현하는 아이가 행복해 보였다. 아이와 같은 마음이었던 나 역시 좋았고.
여름 하늘은 시시각각 다르다. 장마와 폭염이 이어지는 중에도 뭉게구름과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하늘은 분명 아름답다. 같은 하늘일까 믿기지 않을 만큼 날마다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하루에 한 번은 창문을 활짝 열고 바깥의 풍경에 마음을 머물게 하고 싶다. 하루에 한 번씩은 그 속에서 ‘베스트 컷’을 찾아낼 것. 내내 견디기 힘든 하루라도 한순간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창문은 얼마나 열려있을까. 여전히 반은 닫혀있는 채, 아이의 절반만 보고 있던 게 아닐까. 상대를 바라보는 창. 그 창의 문도 활짝 열고 싶다. 편견이나 곡해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의 시선이 상대방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에 머물게 하고 싶다. 그가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무심함 대신 경탄의 마음을 품을 있다면 좋겠다.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고 규정짓기엔 너무 큰 세계. 그 세계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열어둔 창의 폭만큼, 딱 그만큼만 그 사람이 보이겠지.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창도 활짝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