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이웃 동생이 자신의 남편은 옷과 신발을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고 푸념했다. 다른 집 아빠들처럼 내 집 마련이나 집 값 뛰는 것에는 정작 별 관심이 없다면서. 큰 아이의 친구 아빠이기도 한 그를 나 역시 동네에서 자주 뵈었다. 어떤 날은 아이보리색 스웨터가, 또 어떤 날은 카키색 비니와 분홍색 캔버스화가 시선을 끌었다.그는 동네 놀이터보다는 명동 거리에서 볼 법한 패셔니스타였다.
그녀는 남편이 아침에 입고 나갈 출근 복장을 이전 날 밤에 미리 세팅해 놓고 잔다고 말했다. 셔츠와 바지, 겉옷은 물론 모자나 신발까지 코디하는 일은 잠자기 전, 남편이 꼭 거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고.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와- 하는 탄성을 질렀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일주일은 거뜬히 같은 셔츠를 입고 나가는 나의 남편과 비교되어서만은 아니었다. 다음 날 입을 옷을 미리 준비한다는 말에서, 적어도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설렘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침이 설레시겠어."
"맞아요. 알람 없이도 아침 되면 벌떡하고 일어나요. 내가 그 사람 부지런한 거 하나는 인정하지."
먹이고 씻기고 등원시키기 바쁜 아침 시간, 고만고만한 아이 셋을 키우는 집의 아빠가 아침마다 자신의 패션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모습. 그것은 투철한 의지라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향한 순수한 열정처럼 보였다. 비슷비슷한 일상에 담담하다 못해 무심해진 마음을 잠시 춤추게 하는. 설렘을 만드는 일종의 작전 아닐까.
나는 다음 날 눈 뜨는 것이 설레는 사람인가, 아닌가.
사실, 날마다 새로운 것이 아침이다. 내게 주어진 하루는 언제나 '새 것'이었다. 하지만 새 하루를 '헌 것' 대하듯 어떤 설렘도 없이 시작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이는 것은 좋다. 그러나 경험하며 익숙해지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 안의 돌멩이 하나도 커져만가는 느낌이다. 어릴 땐 그 돌이 아주 작아서 마음은 아랑곳 않고 별 것 아닌 일에도 설렜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커진 그 돌멩이는 마음을 꾹꾹 눌러놓아, 좀처럼 들뜨거나 두근거리기 힘들게 만들었다.
얼마 전, 운전하는 남편과 길을 가는데 눈발이 날리더니 금세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뒷좌석에 탄 아이들은 차 창문에 얼굴을 비비며 "와! 눈이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어, 눈 오네..."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우리가 목적한 장소까지 가는 데 눈은 치우고 싶은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설레면 아이요, 설레지 않으면 어른이라던데?"
아아, 매일매일 변화무쌍한 날씨를 기대하며 설레던 나. 한 겨울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봐도 이제는 예전처럼 들뜨지 않는 것에 조금 놀랐다.
그러니 웬만해서 잘 설레지 않는 나와 같은 어른은 스스로 마음을 춤추게 만드는 작전이 필요하다.
단순하고 소소한 방법이지만, 좋아하는 일과를 아침에 끼워 넣으면 밋밋한 하루에도 설레는 마음이 깃들지 않을까.
아이 친구 아빠가 옷 입기를 좋아하듯 나는 아침마다 사과 먹기를 좋아한다. 자고 일어나도 몸이 개운치 않은 어떤 날은 이불 밖으로 나와 주방까지 가는 그 짧은 거리가 천리 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늘어지게 자고 있는 동안 먼저 주방으로 달려 나와야 하는 나의 아침이 그럴 땐 서럽게 느껴진다. 몸은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아침 메뉴로 무얼 또 차려내야 하나 이불 동굴 안에서 복잡한 고민을 시작한다. 막상 차리고 보면 별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냉장고 속 사과를 떠올린다. 아, 사과가 있었지! 하곤 동굴 밖으로 나온다. 바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달려간다. 다른 복잡한 생각은 접어두고 사과부터 쪼개 먹는다. 껍질 채 아삭아삭 씹어먹는 사과 한쪽은 가라앉은 기분을 금세 명랑하게 만들어준다. 내겐 '모닝 사과'가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설렘인 것이다.
나는 올빼미 형이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아이들을 재우고 밤에 하는 편이다. 아침에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할 때, 자기 전에 일부러 메모장에 '사과 먹기'를 적어 둔다.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목록으로 적어두는 것보다 차라리 좋아하는 일과를 적어두는 편이 일찍 일어나는 데 효과적이었다.
'모닝 사과'는 이제 꽤 오래된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새롭게 찾은 설렘 작전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오전에 핸드 드립 커피 한 잔을 내려마시는 것이다.
몇 년째 잘 쓰던 커피 메이커 주전자가 얼마 전에 깨져버렸다. 유리로 된 주전자만 따로 구입하기도 어려워서 그 참에 핸드 드립 용품을 구매했다. 핸드 드립 커피가 맛있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것이 참 번거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커피 내리는 맛과 멋을 포기할 수 없게 되었다. 핸드 드립 커피는 내릴 때마다 맛이 다르다. 원두의 양이나 물의 온도, 시간 차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그 맛을 기대하게 된다. 팔팔 끓인 뒤 적당히 식힌 물을 부을 때마다 커피 빵이 부풀어 오른다. 그것을 볼 때마다 기쁨도 부풀어 오른다. 내게 커피를 내리는 일은 예약된 행복을 찾는 일과 같다.
설렘을 간직한 사람은 젊다. 나이가 몇 살이든 상관없이.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새로운 하루 앞에서 춤추는 마음이고 싶다. 그렇게 가슴 설레는 삶을 살고 싶다. 무엇에든지. 그것이 작디 작은 사소한 것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