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커피가 먼저 웃었다
서류를 접수하러 가는 길.
날씨가 조금 흐릿했다.
우산을 챙길까 하다 말고, 그냥 나섰다.
입구 앞 작은 카페에 들렀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기다렸다.
창밖엔 흐릿한 빛 속으로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다.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그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쓴맛과 향기가 확 퍼졌다.
이제야 정신이 조금 맑아지는 듯했다.
서류봉투를 다시 확인하고,
한 손에는 서류를, 다른 손에는 커피를 들고
접수처로 향했다.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았다.
서류는 충분히 확인한 상태였다.
남은 건 커피 한 잔과… 작은 여유.
너무 여유를 즐겼던 걸까.
커피 향에 취해 있던 그때, 번호가 불렸다.
창구 앞으로 갔다.
“서류 주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조심스레 내밀고 말았다.
접수처 여직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나도 순간 멈칫.
그제야 깨달았다.
‘아, 커피였지…’
당황한 나는 얼른 손에 들고 있던 서류로 바꿔 내밀었다.
그 사이 우리는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커피도, 나도, 서류도
순간 당황했지만,
그 덕분에 조금은 부드러운 공기가 흘렀다.
서류를 건네며 나도 모르게 말했다.
“오늘 커피가 너무 급했나 봐요.”
여직원도 웃으며 받았다.
“네, 커피가 먼저 도착했네요.”
그날, 커피는 서류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일이 괜히 마음에 오래 남았다.
작은 실수 하나가
조금 더 부드러운 하루를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걸,
그날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