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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잉오렌지 Apr 03. 2024

나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다는 철없는 욕망

달콤한 꿈.

Nobody will love you, Nobody will love you,

like - like i do.                                                            - Bob Dylan, Fall Out Boy 




진심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세월에 걸쳐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래서 그림 같은 것에 목숨 걸지 않았을까.


만약 그런 욕망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난 그저 마냥 잿빛인 상태로 죽을 때까지 살아갔을 것이다. 말없는 채. 잿빛인 것에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말을 하고 싶었고, 표현하고 싶었고, 성장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난 말하는 법을 잘 모른다. 언제나 비잉빙 돌려서 말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말에 담긴 속뜻을 잘 모른다. 


그리고 나의 '돌려서 말하는' 말은 흔히 통용되는 개념과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나는 직설적으로 보이는 말을 골라서 한다. 나는 직설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나는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눈치 안 보고 할 말 다 하고 사는 사람의 모습을 꾸며내고 다녔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할 말 다 하고 사는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은... 우유부단하다. 답답하다. 장황하다. 나 자신도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를 때가 많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 그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에는 필터링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에 맞게, 그냥 내 이미지에 맞는 말만 골라서 했다. 그게 더 쉬웠다. 생각은 집에 와서 했다.



그렇게 계속 내 이미지를 이어왔지만.. 내 안에서 채워지지 않은 욕심을 가득 느꼈다. 


나 자신이 구차해보였다. 세상에서 도태된 이상한 사람이라는 게 들통날까 봐 어떻게든 자기합리화에 목을 매달며 자기만족이나 하는 한심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객관적으로 내가 정상이란 걸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의 평가에 목을 매달았다. 



평가받는 것은 두렵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낙인이 '객관적으로' 지어질까 봐.


하지만 평가받고 싶다. 내가 이루어낸,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성장 방식을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이왕이면 그 돌려서 말한다는 재능을 아예 더 키워보기로 했다. 


들키는 것은 싫지만, 표현하고 싶다. 그런 모순되는 욕망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있을지 생각했다. 


그게 내가 내 글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드러내기 시작한 이유다. 아무도 모르게.


아직도 그 누구도 내 취미가 글쓰기라고 알지 못한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더 말을 잘 거는 사람이었으니까.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다보면...


작가가 되고 싶어진다. 당연한 소리지만. 내 글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그 철없는 꿈이 나를 다시 잿빛에 물들게 만든 첫 번째 계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긋한 욕심과 이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글쓰기를 단순히 자기만족 용도에서 끝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내 삶과 연관시켜보고 싶었다. 어렸을 때 즐겼던 그림그리기와는 달랐다. 이번엔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현실과 타협하겠다는 마음이 쉽사리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가 되겠다.. 라는 말처럼 비현실적인 꿈이 어디에 있을까.


수입이나 출판사나 공모전이나.. 그런 걸 넘어서,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그것들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런 걸 따지기 전에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게 나에겐 있었다. 나는 '조금' 특이한 사람이었으니까.



오직 나 한명만을 위해서 쓴 글을 나 말고 누가 기꺼이 읽어줄 수 있을까?


오직 나의 이기적인 욕심 충족을 위해서 쓴 글이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그 어떤 기쁨을 가져올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예전부터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특이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나만을 위한 글이었으니까. 가까운 사람일수록 필사적으로 숨겨야 하는 그런 글이었으니까.



내 글은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위로해줄 수 없었다. 기만자라며 손가락질받는다면 모를까.


나에게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느꼈다.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했듯이.



그래서 나는 내 글을 숨겼다.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큰 잿빛에 빠지기 전에 간신히 내 뺨을 때려 정신 차리게 했다. 


언젠가.. 먼 훗날에. 나이를 먹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 그때 쉬엄쉬엄 취미로 써보는 건 어떨까? 굳이 지금 써낼 필요는 없잖아? 포기할 필요까진 없으니까, 지금은 그냥 내 일기장에만 감춰두고 나중에 꺼내서 다시 읽어보자. 나중에 다시 기회가 생길 거야.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




그 언젠가는 언제지?



세상이 지금과 정반대로 완전히 변했을 때?



어차피 나 같은 이상한 사람의 속마음 같은 거엔 아무도 관심이 없어.


오히려 세상에 드러내는 순간 내가 여태 쌓아왔던 것들이 전부 무너지게 될 거야.


내 글은 세상에 아무런 의미도 가져올 수 없어.


세상은 나 같은 기만자를 원하지 않으니까.



도태된 사람들의 변명에 그 누가 귀기울여 줄 수 있을까?


내 진솔한 이야기가 변명이 아닌 미담이 되기 위해서는 나는 먼저 인정받아야 한다. 평가받아야 한다. 세상에게.




나는 내 이런 고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았다.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지금 내가 당장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일 말이다. 회사원. 공무원. 연구원. 뭐 그런 것들.



작가? 글쟁이? 예술가?


그런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하는 걸 왜 해?


나 같은 이상한 사람이나 좋아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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