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잉오렌지 Apr 04. 2024

운명이 나를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운명이라고 표현하면 기분 좋잖아

호기심, 탐구심, 새로운 것을 알고 싶다는 도전 욕구.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변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그 감정을 해결해주려고 하며, 알아낸 인사이트를 기록하며 자부심을 가진다.


이건 공감능력이 풍부한 선하고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오직 자신의 욕구 충족만을 위해 움직이는 겉속 다른 이기적인 사람일까?



나는 선하지 않다. 내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를 선하다고 평가한다. 나는 이런 류의 괴리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괴리감과 모순이.. 내가 심리학에 진정으로 몰입하게 만든 계기.



운명처럼 나는 심리학에 빠져들었다. 나는 학교에 들어와서 나 자신을 심층적으로 탐구해보는 유익한 경험을 했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지만 가설 정도는 세울 수 있었다. 재밌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제대로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했던 도전은 거짓말처럼 나에게 완벽한 몰입을 선사했다.


마치 세상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 같은 느낌. 나는 여기에 오기 위해서 태어난 듯한 느낌. 꿈에 그리던 곳.

 



사실은 그 반대다.


내가 너를 운명이라고 표현한 순간,


너는 정말로 나의 운명이 되기 시작한다.


내가 우물이라는 달콤한 꿈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운명은 내가 정의하는 것이다.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고.






나는 심리학과를 다니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대학원이라는 키워드와 접하게 되었다. 남들이 들으면 '그런 끔찍한 곳을 왜 가냐'라고 말하겠지만..


나에겐, 우리에겐 조금 예외였다.



우선 심리학과는 대학원을 가는 것이 필수라는, 암묵적이지도 않은 아주 확고한 신념이 과 내에 깔려 있었다.


왜냐하면 심리학과는 전통적으로 취업 못하는 과다(심리학과에 가려는 꿈나무들은 꼭 충분한 고민 후에 몸을 던지길 바란다). 그리고 학부 때 4년 동안 배운 것은 심각하리만큼 겉핥기 수준이다. 대학원 석사 과정까지 밟아야 "나 xx심리학 전공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4년동안 우리는 그냥 개론만 배우다 끝난다.


내 주변에 취업을 준비하는 동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면, "취업? 몰라? 어떻게 하는데?" "일단 석사 학위는 있어야 뭐든 되지 않을까?" 라고 다들 대답했다. 그들 나름의 현실적인 답변이었다. 나도 사실 그렇게 똑같이 생각했다.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그리고 또다른 이유는.. 코로나다.


안 그래도 취업 못하는 과인데 코로나로 인해서 현장 실습이나 취업 관련 행사, 인턴 등 채용 설명회 등등이 완전히 중단되어버리는 바람에, 취업 정보가 그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는 시기를 보냈다(그리고 사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취업 관련 정보가 없었을 거라고 조용히 예상한다. 코로나가 심리학과의 취업이 안된다는 현실을 덮어줄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줬을 것이다). 애초에 선택지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다.


코로나 덕분에 학점도 좋게 받아서 대학원 입시에도 유리해졌고, 하필 우리 때에 코로나가 터진 게 대학원에 가라는 어떤 신의 계시가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농담 같이 그런 소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의구심을 느낀다.



마지막 이유는.. 웃기게도 대학원의 사정이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의 대학원은.. 정말 좋은 곳이었다.


나는 대학원을 갔던 친구가 다른 대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 사정을 생생히 전해들어 대학원이 어떤 곳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지옥 같은 곳인지, 몸을 아무리 갈아넣어도 부족하고, 연구비 경쟁도 살벌하며, 가스라이팅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가스라이팅이란 단어가 화자되지 않는 그런 곳이란 걸.


하지만 우리의 대학원에는 천사 같은 교수님들이 계신 곳이었다(아닌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엔 많은 심리학 대학원이 그렇게 지옥은 아닐 것 같다. 심리학 교수님들은 최소한 인간의 연약한 심리를 논리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심지어 우리 학교의 대학원에는 정말 사람으로서 좋은 교수님들이 많이 계셨고, 지금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착한 사람들과,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운명같이 마주친다. 드라마 같다.


아니면 마치 '마감임박', '하루 10개 한정'이라고 써붙혀놓고 광고를 때리는 그런 홈쇼핑 같다. '저긴 무조건 들어가야 해', '기회 있을 때 붙잡아놔야 한다'라는 생각을 품게 하는, 도파민 가득한 광고 말이다. 의구심은 강해진다.




그래서 나는 또.. 아무 생각도 없이 대학원에 가기로 했다. 부모님도 이제는 대충 고개를 끄덕일 뿐 내 선택을 방해하지 않았다. 예상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번에 나를 잿빛에 물들게 한 건 나 자신이었다. 변명의 여지도 없이 내 잘못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억압당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또다시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아니,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휩쓸렸다. 휩쓸렸던 결과 찾아왔던 내 첫 번째 대학에서의 역겨웠던 경험을 금세 잊어버리고, 또 내가 아니라 남의 의지에 휘둘렸다.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대학에 왔다. 내가 조금 더 내 삶을 주체적으로 일구어갈 수 있게끔.


하지만 그 해답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안주했다. 나는 또 고민도 없이 친구들을 따라 강남에 가는 나날들을 보냈다. 의구심.




내가 정말 이 길로 가는 게 맞는 걸까?


내가 정말 이 길을 가고 싶은 게 맞나?


내가 널 좋아하는 게 맞는 걸까?



예전에 두 번째 수능 준비를 할 때도 그랬잖아. 공부 자체가 좋았던 게 아니잖아.


처음으로 부모님께 반항해보고 오롯이 혼자서 뭔가 이뤄내본다는, 그런 경험을 좋아한 거잖아. 주변에서 인정해주니까 계속 엑셀을 밟은 거잖아. 처음으로 인정받았으니까, 힘든 것도 잊어버리고 막무가내로 돌진한 거지.


예전에 첫사랑에게 고백했을 때도 그랬잖아. 그 사람 자체가 좋았던 게 아니잖아.


오랜 시간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던 내성적인 아이가 몇년동안 짝사랑을 해왔다는 '쪽팔린 일'을 만천하에 드러낸다는 그 결심을 사랑했던 거잖아. 변화를 향해 발을 내딛는 나 자신을 사랑했던 거잖아.



그래서 또 착각하는 거 아닐까?


또다시.



그리고 난 내가 여태껏 외면해왔던 현실과 마주한다. 


시험에 떨어졌다. 나 혼자만이 떨어졌다. 담담했다. 간절하지 않았다. 내 가슴은 여전히 평온하다. 내 감정이 의구심을 증명해주었다. 객관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내가 시험에 무조건 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떨어진 것에 의아해했다. 내 열정이 온데간데 사라져버린 것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고민들을 알지 못했으니까.



너무 몰입해버렸나봐. 이젠 정말 힘들다는 말을 절대로 내뱉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버렸으니까.




안 어울려.




그런 속삭임이 들려왔다.


나의 안에서부터.






꿈은 언제나 그랬듯이 또다시 흔적도 없이 쉽게 잊히고, 내가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돕는다.


나는 다시 내 '운명'을 갖다버리기로 했다.



이전 16화 나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다는 철없는 욕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