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좋은 친구.
우울증은 일종의 상태다.
우울증 말고도 대부분의 정신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상태라는 게 어떤 의미냐면, '우울증'이라는 것 자체가 나의 성격이 되어간다는 의미다.
질병으로 비유하자면.. 감기는 잠깐 앓으면 끝이다. 몸살도 마찬가지다. 며칠 아프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렸다고 생각해보자. 코로나는 일반 감기와 비슷한 취급을 한때 받았지만 사실 감기와는 결이 다르다. 후유증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그 후유증은 우리의 뇌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르며, 그 변화는 내 앞으로 남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해보자. 치매는 병이지만, 동시에 상태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 '그 사람 감기 걸린 사람이야'라고 소개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 치매 걸린 사람이야'라고는 소개할 수 있다. 치매는 확실하게 그 사람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준다. 원래 그 사람이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 통째로 잊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우울증도 비슷하다. 실제로는 아무리 멋진 사람이라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란 낙인을 아무렇지 않게 씌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울증이다. 실제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 낙인은 세상이 아니라, 본인이 씌우는 것이다. 본인이 그런 가면을 쓰면, 세상도 가면을 쓴 나를 바라본다. 실제의 나가 아니라 내가 쓴 우울이라는 가면을 평가한다.
왜냐하면 '실제의 나'는 환상이니까.
나는 나의 우울을 지혜롭게 사용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
왜냐하면 우울은 이미 나의 인생에 끈덕지게 늘러붙어버렸고, 더이상 떼낼 수 없는 동반자 관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울은 나의 인생 전반에 걸쳐 극심한 영향을 미쳤고, 먼 과거의 우울증이 한번 생성해버린 나의 행동 패턴은 무의식 속에서 수십년동안 계속 나를 조종해오고 있다. 한번 변화한 정신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사실 난 원래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싫어도 이 우울과 영원히 함께 해야하며, 그럼 적응 혹은 현실도피밖에는 답이 없다.
그래서 난 적응하기를 택했다.
치료가 아니라, 변화를 해야 한다. 나를 이루는 수많은 파편 중 하나, 가장 치명적인 결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길 택했다.
사람은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무척 감정적인 존재이며, 내가 현재 어떤 기분에 있느냐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진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다른 사람의 기분도 좋게 만들어줄 수 있다. 화가 나면, 그 분노를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로 삼을 수 있다. 깜짝 놀란다면, 몸을 반사적으로 빨리 움직일 수 있다.
그럼 우울하면 뭘 할 수 있을까?
흔히들 우울은 그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뿐이며, 인생에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 반드시 치유를 해야 하는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날 우울하게 만드는지, 내가 왜 힘든지,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파헤칠 수 있다. 기분이 좋고 행복할 때는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나다움을 가장 잘 알아낼 수 있는 시간대가 바로 우울한 시간이다.
나는 오랜 시간 내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생각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프레임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소심함. 우유부단. 결정장애. 흔히 그런 소리를 듣는 부류의 사람.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서 행동으로 잘 옮기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생각 그만하고 실천하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생각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강제로 되는 건데 말이다. 그런 무신경한 '조언'을 들을 때면 난 언제나 화가 솟구쳤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생각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성공했다고. 생각이 나의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설령 그것이 합리화와 현실도피라는 핀잔을 듣다 하더라도,
그 합리화야말로 진실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조언과는 정반대로 실천했다. 생각을 더 깊게 했다. 많이가 아니라, 깊게. '나 지금 우울해'라는 생각에 취해있는 게 아니라, 내 우울이란 감정을 철저하게 심층적으로 파헤쳤다. '생각 많은 사람'이라는 개념이 부정적으로 여겨지지 않게, 오히려 남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성격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반항했다.
나는 왜 우울하지?
내가 지금 이런 생각들을 왜 하는 거지?
왜? 왜? 왜?
심층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자, 나는 나 자신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잿빛이 다가올 때마다 핸드폰을 꺼내서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들을 메모장에 끊임없이 써내려갔다. 그건 글이 아니라 그냥 기록이었다. 전혀 정돈되지 않은 그저 의식의 흐름이다.
무아지경으로 수천자를 써내려간 후 멍하니 내가 쓴 장문의 혼돈으로 가득찬 메모장을 들여다본다. 내가 언제 이런 걸 썼는지, 어떤 심정으로 기록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바로 5분 전에 썼던 것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쓴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기록을 탐구할 수 있었다. 제3자의 시선에서.
마치 남의 글을 비평하듯이 정돈하고 그룹화해갔다.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내 글솜씨를 비웃기도 했다. 앞문장과 바로 뒷문장의 논리가 전혀 이어지지 않아,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고쳤다. 다듬었다. 마치 가면을 조각하듯이 정성스럽게 다듬어갔다.
이것이 내가 '수련'했던 방법이다. 글쓰기, 그리고 나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그 수련 과정은 결코 다정하거나 따스하진 않았다. 나는 내가 쓴 글을 가차없이 지우고 몰아세우고 까내려갔다. 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수백 수천자를 바로 흔적도 없이 죽여버렸다. 의미가 없는 글이라면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부담없이 그럴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쓴 글이라는 체감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틀림없이 그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재미를 느꼈다. 점점 그 폭력적인 글쓰기는 나의 취미가 되어갔다. 나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라고는 틀림없이 표현할 수 없었지만, 어느새 나를 깊게 잠식하던 어두운 감정은 잔잔하게 승화되어갔다.
이런 남들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운 취미를, 남들에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글쓰기라고 하면 보여달라고 할 테고, 일기 쓰기라고 하면 의미가 묘하게 달라지는 데다가 이상한 취급을 받을 것 같았다. 글쓰기라는 취미 또한 평범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한동안은 누군가 취미를 물어볼 때마다 대충 노래나 게임이라고 얼버무렸다. 사실 그런 것들은 그만둔지 몇 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말이지.
지금은 내 이런 취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
공포영화에서 귀신의 정체를 알고 나면 더이상 무섭지 않게 느껴지는 그런 효과가 있지 않은가? 그것과 똑같다.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생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이해할수록 나의 우울과 수많은 생각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이후로, 나는 우울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친구이자, 동반자, 나의 뮤즈로서.
이 우울이야말로 나를 작은 예술가로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우울이 내 안에서 사라지진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하지만 고통에서는 벗어났다. 나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언제나 우울했던 나는,
이제 우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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