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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잉오렌지 Apr 07. 2024

왜 나만 빼고 다 우는 걸까

꼭 내가 이상한 것 같잖아

쿨하고 뒤끝 없는 성격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간절한 만큼 구질구질해지는 법이다.


매사에 쿨하다는 건 매사에 애착이 별로 없다는 뜻.






고등학교 시절, 안 맞는 친구들과의 다툼이 있었고, 담임 선생님은 우리를 불러서 한 조용한 교실에서 서로에게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하게 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선생님이 부임한 신임 교사셨는데 우리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셨다.


다툼이 일어난 무리들은 한 테이블에 앉았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서로에게 못했던 '얘기'를 토해낸다. 담임 선생님에게 문제를 토로한 장본인이 가장 먼저 시작했고, 첫 번째로 물어뜯을 먹잇감은 내가 되었다.


아, 억울하게도 첫 번째에서 끝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애가 나에게 평소에 했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그때 들었던 '평가'는 아직까지도 내 마음에 남아서 나를 변화하게 만들 동기부여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면 띠껍다, 싸가지없다,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 등등. 


화가 나고 민망하면서도 신기했다. 타인이 평소에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나라하게 듣는 경험은 나에겐 큰 부담이면서도, 나 자신을 고치기 위한 좋은 데이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애가 말했던 나의 단점들은, 내가 그애에게 평소 느꼈던 생각과도 똑같았다. 


우리는 속으로 서로에게 똑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사람은 정말 자기 성격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보려고 하지도 않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나도, 그애도



사실 우린 똑같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날 첫 번째 타겟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하니까.


싸가지없는 애들끼리 만나서 갈등이 빚어졌다는 흔한 이야기. 끼리끼리 모인다.


다만 나에겐 편이 많았고, 그애는 편이 없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나는 싸가지 없는 사람은 맞았지만 오랜 시간 주변의 눈치를 보는 능력을 키워왔다. 나는 다소 복합적인 사람이었고, 그애는 일관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겉과 속이 똑같은 가식없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처음엔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하자 농담을 했다. 그러자 선생님도 그애도 나에게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는 눈치를 주었다. 


그래서 나도 험악하게 굴기 시작했다. 분위기에 맞게. 



그애는 날 물어뜯는 와중에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그러자 내 친구들도 서서히 억울함과 울분 섞인 목소리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교실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선생님은 당황해 우리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아무 변화도 없었던 건 내쪽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휴지를 가져와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는 척을 했다. 그렇게 물어뜯는 과정은 나만 물어뜯히고 끝났다.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우는 거지?


왜 나만 빼고 다 우는 거지?


정작 물어뜯힌 건 난데.



맞지 않는 친구랑은 당연히 멀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모든 사람과 친해질 수는 없잖아.


서로 싫어하는 사람들과 굳이 힘들게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잖아.


사과? 잘못? 화해?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사과를 하고 마음을 풀어야 하는 거지?




그런 성격을 갖고 태어난 잘못?




나는 홀로 그런 고민에 빠졌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후..


나를 물어뜯었던 그애는 얼마 뒤 다른 친구들을 찾아서 그 무리에 합류했고, 다른 무리로 떠나고 나서도 내 친구들과 그애의 다툼은 은밀하게 지속되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은근하게 시비를 걸었고, 일부러 몸을 부딪히고, 다른 친구에게 뒷담을 하고.. 여고생들이라면 꽤 많이 있을 법한 그런 상황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도 계속 지속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물어뜯혀졌던 나와는 그런 일이 없었다. 못했던 말을 쏘아붙이고나니 시원했나보다. 나를 물어뜯고나서 교실이 눈물바다가 되었기에, 나만 물어뜯히고 다른 친구들은 물어뜯히지 않은 상태로 유야무야 자리가 마무리되었었다. 그래서 마저 다른 자리에서 이어서 쏘아붙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나 같은 기분 나쁜 사람에겐 그럴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때 교실에서 한번 '얘기'를 나누고 난 후로 나와 그애는 접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물어뜯은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앙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관심 자체가 사라졌다. 내 친구들이 여전히 그애와 싸우던 말던, 내 알 바는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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