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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잉오렌지 Apr 20. 2024

취업이 안되서 스펙 확실하게 쌓으려고 대학원 가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나는 어중간한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관점이 넓은 사람.


객관적으로 말하면 어디에도 재능이 없는 사람.





UX. User Experience.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의 경험을 고려하는 것. 


어떤 느낌인가?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냉철하고 논리적인 분석력. 넓은 시야와 유연한 커뮤니케이션. 유저의 입장을 생각하는 공감능력. 


언뜻 보면 전혀 공존할 수 없어 보이는 세 가지를 동시에, 넓지만 얕은 재능을 요구하는 곳(아닌 직무도 있지만). 여기서 필요로 하는 '공감능력'이란 사용자와 같이 눈물 흘려주는 그런 공감이 아니다. 그냥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는 논리적인 공감능력의 의미다. 그래서, 나 같은 어중간하게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전부 모아놓고 봐서도 그중에서도 난 매우 어중간한 사람이란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UX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사실 나의 전공 심리학과 관련이 있다. 이전 글에서 써놨듯이, 심리학은 UX 전공이라곤 할 수 없지만 UX와 '관련은 있는' 전공이다. 왜냐하면 UX에서 인지심리학 원칙을 매우 많이 써먹기 때문이다.


나는 전공 강의를 통해 처음으로 UX를 접했고, 의외로 내가 실험을 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이 UX에서 하나의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런 것들에 관해 교수님께 짬짬이 진로상담을 해왔고,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교수님은 무척 진실된 분이었다. 내가 진로 얘기를 꺼내자 본인과 아무 상관도 없는데도 정성스럽게 기업 사이트와 본인 과거 경험까지 들고 와서 상담해주셨다. "저도 원래 취업을 하려고 했었지만 잘 안됐습니다"라고 정말 솔직하게 말씀하기도 하셨다.



"제 취업한 동기들도 대부분 UX 쪽에 취업을 했습니다. 여기 채용공고에 우대사항 보시면 심리학 전공자라고 써져 있는 거 보이시죠?" 


봤다. 정말 뚫어져라 봤다. 말도 안돼. 심리학 전공을 콕 집어서 언급하는 직무가 이 세상에 있었다니.


이런 달콤한 말씀에, 심지어 교수라는 전문가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나는 목을 매달았지. 심리학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고, 대학원 경력을 경력으로 인정해준다기에 나는 한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학원 입시에 목을 매달았었다. 


석사, 박사 학위가 없으면 4년동안 열심히 교양이나 배운 셈이나 다름없는 지옥 같은 심리학 분야에서, 취업 시장에서 직접적으로 심리학을 언급하는 분야가 있다는 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나는 몇날 며칠을 설레는 마음에 부풀어 잠을 이루지 못했더랬다.




결과적으로 일단 대학원은 물 건너 갔다. 


대학원을 가기엔 내 능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나의 성향 또한 문제가 되었다. 이제 와서 깨달았긴 했지만..


교수님 가라사대..



 "대학원을 나오면 취업 문이 좁아집니다."

 

  

응? 좁아진다고? 


그 반대가 아니라?



그때 나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지 못하고 이 양반이 나를 제자로 뽑지 않으려고 돌려말하는 건가 생각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 입장에선 날 뽑지 않는 게 당연했다.


지금은 교수님의 말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교수님은 객관적인 시야에서 나의 성향을 진작부터 파악하고 계셨다. 연구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저 사회인으로서 인정받고 싶어했던, 나도 잘 몰랐던 내 성향을 말이지. 


또한, 제대로 된 실무 경험도 없이 '쓰잘데기없는 기초학문 연구'나 한 나이 많은 고학력자는 취업 시장에서 전혀 메리트 있는 인재가 아니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 반대라면 모를까.



쓰잘데기없는 기초학문 연구. 최소한 우리나라에선 그렇다. 



아무튼 나는 엉겁결에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나는 교수님의 동기들이 UX에 취업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 믿고, 큰 두려움 없이 진로를 UX 및 IT 분야로 확정했다. 나는 대학원 자체가 내 목표는 아니었고 오로지 취업을 목표로 대학원에 가려던 것이었기 때문에, 불합격 발표에도 덤덤했다. 나는 이렇게 된 거 '에이, 그냥 지금부터 후딱 취업해서 경력이나 쌓자. 꼭 대학원 갈 필요 없잖아?'라고 합리화를 하며 본격적으로 UX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그때 하나, 교수님이 보여주셨던 자료에서 일부러 눈을 돌렸던 게 하나 있었지.




교수님꼐서 보여주셨던 예시는 전부 미국의 얘기였다. 그때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상황이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지. 우리나라는 아직 갈길이 멀다.



그러니 만약 UX 직무를 도전하고 싶은데 대학원을 가고 싶은 꿈나무가 있다면, 심리학은 취미로만 배우고 꼭 UX 대학원 아니면 인간공학 대학원을 노리시길 바란다.


아니지. 그냥 가지 말길 권한다. 채용 시장이 더 병신같아지기 전에 그냥 빨리 어디라도 취업하길 바란다. 앞으로 더 힘들어질 테니까. 무조건.




그래서 결국 요약하면 나는, 비전공자다. 


그렇게 내 취준 과정에 불이익이 되는 스펙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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