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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잉오렌지 May 11. 2024

뭐? 이력서 다 쓰지도 않았는데 면접 제안?

 응 그게 내 마지막 면접이었어

직업은 잘 골라야 한다.


회사를 잘 고르기 전에, 이 직업이 나와 맞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 직업이 내가 '노력하면 실력을 쌓을 수는 있는 일'인지부터.


연봉? 워라밸? 통근 거리? 


그런 건 실력을 인정받고 취업이 확정되고 난 여유로운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나는 졸업 후 반년 동안 UX 공부를 마치고, 포트폴리오만 일단 마무리한 후 채용공고 사이트에 내 포트폴리오를 올렸다.


그 당시 나는 아직 이력서를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였고, 포트폴리오 초안만 일단락해놓은 채 계속해서 자기소개서 문장을 다듬고 있었다. 포트폴리오는 pdf가 아니라 노션에 링크로 만들어놓았기에, 정돈되지 않은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링크만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내 포트폴리오는 아주.. 길었다. 심지어 노션에 정리한 줄글 형태 논문형 포트폴리오였기에 그 '읽기 싫음'의 정도는 더욱 심각해진다. 수도 없이 고치고 요약한 지금의 포트폴리오도 겁나게 긴 걸 보면, 그당시 나는 정말 인사담당자를 의도치않게 빅엿을 먹이고 있었다. 난 그게 긴 줄도 몰랐다. 필요한 내용만 논리에 맞게 알차게 넣었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그 말은 맞긴 하다. 내 글엔 논리가 있었다. 필요한 내용이었다. 

다만 나한테 필요한 내용과 인사담당자에게 필요한 내용이 달랐을 뿐이다. 


무지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다.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가고 싶었던 위시리스트 중 하나에 있었던 회사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 면접 제안이 왔다. 내가 사이트에 대충 올려놓은 이력서를 보고, 괜찮겠다 싶어서 내게 제안을 주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원래 지원하려고 했던 꽤 괜찮은 스타트업이.


즉 다듬지 않은 이 길고 형편없는 초안만을 보고, 혹은 내 작품 제작 의도만을 보고 제안이 왔다는 것.


내 작품이 아닌, 나라는 사람을 원해서. 완성되지 않은 작품 속에 숨겨진 나의 의도와 성향을 파악해서.


나를 더 이해하고 싶어서.



'이게 뭐지? 이력서를 완성도 안 했는데 면접 제안이 왔다고?' 



나는 당혹스러웠고, 날아갈 듯이 기뻤다. 나는 그 당시 면접 제안 = 스카웃과 거의 비슷한 말이라고 아주 지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단, 비전공자로서 내 포트폴리오가 괜찮은 스타트업 기준에서 먹혀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뻤다. 내가 정말로 축복받은 사람인가 생각했다. 한없이 오만한 생각에 빠지며 달콤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결과는 떨어졌다. 당연하게도.



그 당시 나는 취준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나의 실력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공자니 비전공자니 그런 타이틀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내 실력을 키우는 것에만 집중했다. 면접 제안이 온 건 그런 내 실력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것도 당연히 가장 중요한 실력 중 하나이지만 나는 그쪽은 무시했다. 내 무의식은 내가 마음 편하게 도피할 수 있게끔 나를 기만해주었다. 나는 나약한 사람이었으니까.



사실 그 반대였을 거다. 그 보살 같은 회사는 내 실력은 매우매우 부족하지만 그걸 봐주고 오직 내 개인적인 성향에만 집중해서 보았을 것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전공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정말 사적인 영역에서의 내 인생이 어땠는지. 내 가치관이 회사와 비슷한지. 그래서 면접 당일에 실무 면접을 전혀 안 보고 컬쳐핏을 더 먼저, 아주 진중하게 이끌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달랐다. 정반대였다. 성격은 비슷했는데, 성향이 달랐다. 자세한 면접 얘기는 다음 화에 쓰겠지만, 


요점은, 내 실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보잘것없고 나만 그걸 몰랐다는 것이다. 

그걸 면접 본지 약 반년이 지나서야 겨우 깨닫다니.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아직도 그 회사가 왜 굳이 나한테 제안을 준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 객관적으로 나 자신이 절대로 '디자이너'에 걸맞는 실력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디자인 캠프를 하면서 멘토님께 항상 "디자인 실력이 부족하다"라는 말만 부지기수 들어왔었다.


심지어 나는 면접을 볼 때 크게 긴장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면접 경험도 되게 좋았다. 컬쳐핏 면접이었기 때문에 진솔한 토론을 나누었고, 정말 어려운 질문이지만 대답을 잘했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후였다.


그 면접이 나의 그해 처음이자 마지막 면접이었고, 그 이후로 나는 크나큰 면접 공백기를 맛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처음이자 마지막 면접은 나에게 '나는 시장에서 먹히는 사람이야', '나 정도면 충분히 이 정도 수준 기업 넣을 수 있어'라는 지대한 착각을 심어준 채 홀연히 내게서 떠나버렸다.


쓸데없이 회사 보는 눈만 높여주고 말이야. 내가 가지 못하는 회사가 좋은 회사여봤자 나에겐 손해뿐이다. 차라리 그 회사가 엄청 별로였다면 미련도 가지지 않았을 텐데.


 


나는 취준 기간동안 기업마다 철저하게 홈페이지와 뉴스를 조사해서 자소서와 이력서를 회사 맞춤형으로 채워나갔다. 하나하나 쓸 때마다 레벨업한다는 느낌으로 새로운 양식의 이력서를 끊임없이 만들어갔다. 과거에 썼던 이력서도 버리지 않고 가져올 건 가져오고 버릴 건 버렸으며, 유료 취준 강의를 들으며 스스로 피드백하길 반복했다.


그래도 떨어졌다. 이상했다.



취준 강의에서 하지 말라고 했던 것들을 나는 처음부터 안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1) 복붙한 티 남

2) 채용공고를 안 읽음

3) 회사의 이득이 아니라 본인 노력과 성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음

4) 자소서에 본인 스토리가 없음

5) 혹은 자소서에 본인 스토리'만' 있고 회사 직무와 관련된 역량이 없음



면접이야 떨어지는 이유가 사람 대 사람이 만나는 거니까 다양하다고 치자.


그런데 이 체크리스트를 다 통과했는데도 서류를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자소서? 이력서? 포트폴리오?




그냥 내 실력이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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