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제자리에서.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고래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존재라고 착각한다.
고래는 칭찬에 취해 춤을 춘다.
자신이 만들어낸 망상 속에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돈다.
빙글빙글.
나는 사실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디자인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래서 무작정 나 자신만 믿고 노력했다. 성실하게 노력했다. 세상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나는 성실하다, 노력한다라는 칭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꼬인 사람답게.
똑똑하다, 잘한다, 어떻게 한 거냐, 별 기대 안했는데 의외로 능력있다, 알아서 잘한다, 마침 딱 이게 필요했는데 어떻게 알고..
이런 칭찬이 좋지.
하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에 비해, 나의 실제 스승, 부트캠프에서 멘토 선생님께는 그리 칭찬을 받지 못했다. 성적도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었다.
즉 객관적인 지표는 언제나 내게 말하고 있었다. 꿈 깨라고. 우물에서 벗어나라고.
부모님은 내게 언제나 강조하듯이 이렇게 말하셨다. 처음엔 느리지만, 나중에는 더욱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일. 대기만성.
같이 꾸준히 일하는 사람들에겐 인정받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다소 인정받기 어려운 스타일. 첫인상이 그리 좋진 않지만, 처음엔 열정도 없고 만사 대충대충인 깡통 같은 사람으로 비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첫인상이 벗겨져 진가가 드러난다고. 집 밖으로 나가면 순식간에 사람이 뒤바뀌듯이, 평가 또한 순식간에 바뀐다고.
내가 첫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은 외적 요소다. 열정적이라고 표현하긴 어려운 미적지근하고 느긋한 성격. 겉으로는 전혀 티나지 않는 열정(심지어 나조차도 내가 열정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의 팀원들이 나보고 열정적이라고 했을 때 난 소스라치게 기겁했다). 싸가지 없는 외모? 자존감이 높은 듯 낮아 보이는 묘한 알 수 없는 빙신 같은 신비주의. 말투. 다소 부족한 기초 지식. 정말 필요한 것 외에는 전혀 하지 않는 모자란 상식 수준. 포장을 못하는 지나치게 솔직한 성격. 전공. 여러 가지.
나열해놓으니 문제점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 내가 고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확실히 처음 스타트가 느린 편이다. 부모님 말대로 한번 발을 디뎌놓고 나면 금방 따라잡을 자신이 있지만, 발을 디디는 것부터가 어렵다. 시작이 어렵다. 출발점에 서는 것조차 버겁다. 누가 '시작이 반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나? 정말 그 말대로다.
그 첫인상이 모든 과정에서 반이나 차지할 정도로 정말 중요한 건데, 나는 계속 그걸 무시하고 있다. 일부러.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
나는 내가 디자인 부트캠프에서 멘토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 첫인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진짜 못하는 게 아니야. 디자인 실력이 남들보다 부족하긴 해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는 재능이 있어. 하지만 멘토님은 그 재능을 못 알아본 것뿐이야. 왜냐하면 날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지금은 디자인 실력이 부족하긴 해도 애초에 노베이스에서 몇달만에 여기까지 올라온 거 감안하면 잘하는 거지. 노베이스인데도 미대 출신 경력자들이랑 어쨌든 비비고는 있잖아? 멘토님은 내 성장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당장 현재 내 성적을 본 거니까 저평가할 수밖에.
그런 식으로 합리화할 여지는 많았다. 나는 정말 아주 성공적으로 합리화를 했다.
그래서 나는 멘토님의 조언을 반은 듣고 반은 넘겼다. 어차피 학원처럼 직접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소통도 즉각적이지 않아서 나라는 수강생에 대해 전부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피드백이기에 전부 다 받아들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참 논리적이지?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어차피 논리적인 이유 같은 건 갖다 붙이면 되는걸.
사람이 애매하게 똑똑하면 본인이 만들어낸 '지혜'의 구렁텅이에 이렇게 푸욱 빠져 헤어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완전히 똑똑하거나, 차라리 멍청한 게 낫다. 애매하게 똑똑한 사람은 본인 상상에 빠져 남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 오만한 사람이 되기 마련이니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뇌에 빠져있었다.
듣기만 해도 행복한 마약 같은 가스라이팅에.
그리고 그 가스라이팅은 결국 나 자신이 키워낸 것이다. 내가 가면을 쓰고 다녔으니까 말이지.
원망할 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나약한 나 자신을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