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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잉오렌지 Apr 13. 2024

우와! 쟤 좀 봐! 심리학과 출신이래!

왜 그런 쓸데없는 걸 배웠대?

* Prologue


나의 취준 스토리, IT로의 여정 얘기를 기록하기 전에..


내가 취준을 시작하기 전 내 전공, 심리학과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조금 풀어보고자 한다.




심리학과에 대한 편견엔 여러 개가 있다. 


그중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대부분의 편견이 그러하듯이.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심리학과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그냥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어중간한 현실을 그냥 기록해두고 싶었다. 



나는 심리학과다. 그리고 동시에 IT 업계에 취업하고 싶은 예비 UXer다. UX 전공은 아니지만 관련은 있는 학과를 나왔고, 어떻게든 이 경험을 살리기 위해 아득바득 기를 쓰는 중이다. 왜 갑자기 UX로 방향을 틀었냐고 묻는다면, '그냥'이라고밖에 대답하지 못하겠다. 내 인생에서의 선택들이 여태 그래왔으니까. 엄청나게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리고 나는 내 취준 경험을 통해서, '관련은 있는' 이라는 단어가 이런 단어들로 정확하게 치환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결국 전공이 아니란 거네?"

"어중간하다."



나는 어느새 소위 말하는 교양만 잔뜩 배운 겉멋쟁이가 되어있었다.





심리학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공감능력이 풍부하네"

"다정하겠다"

"그럼 사람들 마음도 다 꿰뚫고 그래? 내 MBTI 맞춰봐."

"너는 전공에서 그런 거 배웠으니까 뉴스에 저 사람들 심리도 잘 알겠네?"

"나 오늘 이런 꿈 꿨는데 해석 좀 해줘."



그래그래, 아주 흔한 이야기다. 이런 편견들은 나 말고도 많은 심리학 전공자들이 반박해주리라 믿고 넘어가겠다. 그리고 꿈은 웬만하면 개꿈이다. 나는 심리학 중에서 MBTI,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을 가장 싫어한다. 생각해보니 MBTI와 프로이트는 심리학조차 아니다.


아, 하지만 완전 틀린 편견은 아니다.



최소한 우리의 교수님들은 끔찍이도 친절했고,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마음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말을 고르셨다. 성적 산정 방식을 캐물어보려고 들어갔더니, '공부 열심히 했을 텐데 속상했겠다'라고 능숙하게 선수치는 교수님도 계셨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심리학과의 교수님들은 사람의 심리가 얼마나 연약한 것이고 잘 망가지는지를 논리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또라이가 다른 과에 비해 별로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내 과에 대해서 욕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4년동안 정말 알차고 재미있게 지식을 배웠다. 설령 그 지식이 내 취업에 쥐뿔 도움이 안되며 나는 4년동안 열심히 뜬구름 잡는 법을 연습하면서 있어보이는 강의만 주구장창 들은 셈이 되어버리더라도, 욕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수님이 좋은 분들이셨기 때문에.



이도저도 못한다. 시원하게 욕하고 버려버리거나, 아니면 너무 감사해서 절을 하던가 둘 중 한쪽을 선택할 수 있다면 맘이 편할 텐데, 어중간하다. 또 어중간하다. 친구 한 명이 있는데 맨날 약속 안 지키고 내게 민폐만 끼치지만 심성이 착하고 연약해서 내가 욕을 퍼부을 수 없는 바로 그런 심정과 똑같다.


전공을 정하기 전에는, 이 전공이 내 적성과 맞냐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이걸 고민해야 한다.



내가 이 전공을 통해서 뭘 얻을 것인가?



나는 음.. 


결과적으로는 정신력을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두 개의 전공에서 다.





심리학. 요즘 핫한 바로 그 전공, 많은 이들이 원하고, 또 많은 이들이 의외로 높은 입결 탓에 좌절하고, 간신히 들어가서 수많은 과제에 나가떨어지고, 힘들게 졸업하고나서 우리의 길은 대학원밖에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또 절망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어리석은 이들이 원하는 마성의 전공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시작 지점이 조금 달랐다. 


심리학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임상, 상담. 


대부분의 학생들이 심리학과에 가는 이유는 이 '상담'이란 걸 배우기 위해서 가지만, 나는 상담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우울증이라는 개념도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배웠다. 그 이전에 정신병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 몰랐다. 상담? 진로상담? 연애상담? 뭐 그런 건가?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다만 심리학은.. 아마 심리학만큼 하위 분야에 따라서 분위기가 급변하는 학과도 없을 것이다. 심리학과에는 나처럼 공감능력이란 게 없는 사람들이 반이고, 나와 달리 공감능력이 극심한 사람들이 반이다. 반반.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을까?


나는 심리학과에 다니며 어느 날은 철학을 공부하며 인간과 세상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는 법을 배웠고,

어느 날은 코딩과 연구방법론을 배우며 인간을 오로지 수치 데이터로만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아, 그리고 나는 둘 다 좋아한다. 내 흥미는 어느 한쪽에 치우쳐있지 않다. 난 어중간한 사람이니까. 이도 저도 못하는.



나는 심리학을 배우며 모든 인간은 하나하나 특별하고 숭고한 존재라는 것을 배웠고, 모든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동시에 배웠다(짐승이 의외로 인간만큼 똑똑하다는 소리로 받아들여주시면 좋겠다). 


하루하루 다른 관점에 시달렸다. 어느 날엔 인간을 위대한 존재라며 우러러보면서도, 어느 날엔 인간을 파블로프의 개만도 못한 줏대없는 동물이라며 무시했다. 혼란스러웠다.




끝까지 두 관점 중 하나를 결정할 수 없었던 어중간한 나는 학교를 떠났다.


원래는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남들처럼.


대학원은 어중간한 사람이 건들만한 영역이 아니었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대학원에 가서 버틸 수 있을까? 대학원은 학교가 아니다. 배우는 곳이 아니다. 개척하는 곳이지.


최소한 난 이거 하나만큼은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본인 의지가 아니라 타인에게 휩쓸려서 진로를 선택한 자의 미래를.



능력이 부족해서 대학원에 가지 못하는 것을 나는 '나의 재능을 찾으러 떠난다'라는 고급스러운 말로 포장하며 학교를 떠났다. 모든 친구들이 나를 응원해주었고, 예상했다는 듯이 웃었다. 나 같은 자유의 영혼이 대학원에 있는 건 안 어울린다며. 나는 그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의 고민과 고통은 나만 품고 있기로 아주 오래전부터 정했으며, 언제나 당당하고 진취적인 인간으로서 그들의 기억에 남고 싶었다. 그것이 내 유일한 기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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