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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07. 2019

언제든지 버릴 그리고 버려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호주 직장 생활: 해고와 퇴사

같은 부서에 하루 종일 거의 낚시 유튜브만 보는 동료가 있었다. 아니, 늘 유튜브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 산 집의 정원 공사를 직접 하느라 피곤한지 꾸벅거리며 졸기도 했다. 

그의 연봉은 얼마였을까? 약 13만 불 (한화로 1억이 넘는다). 

게다가 그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만 할 뿐 해결책 제시는커녕 해결책을 위해 미팅을 하면 불평과 불만을 토로할 뿐이었다. 그는 한마디로 우리 부서의 free rider/trouble maker였다. 


누구도 그의 매니저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데이터베이스 관리자라는 그의 업무 특성상 결국 나에게 배정되었다 (나의 연봉도 나이도 그보다 낮았다. 팀장이 팀원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거나 나이가 더 많아야 한다는 룰은 없으니까). 그에게 태블로(Tableau, 데이터를 시각화하여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를 사용하여 아시아 지역들을 위한 몇 가지 리포트 대시보드를 만드는 간단한 업무를 맡겼다. 2주 후 진척을 확인하기 위한 미팅에서 발견한 건 0%의 진척과 아시아 데이터 담당자와 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말을 하기 위해 왜 2주를 기다렸던 걸까? 

그의 책상과 내 책상의 거리가 고작 1미터일 뿐인데.

어떤 점이 문제인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의논하고 2주 후 다시 미팅을 갖기로 했다. 다음 미팅에서 역시 0%의 진척과 함께 이번에는 ‘신선하게’ 1시간 동안 회사와 업무가 싫다는, 현재 포지션은 비전이 없다는 둥 사적인 불평, 불만을 꺼내놓았다. 인내심을 끌어모아 직장동료로서 할 수 있는 조언을 했다. 회사에 머물든 떠나든, 앞으로 자기 계발을 위해 어떤 분야로 심도 있게 공부하면 좋을지. 

‘그걸 다 공부하고 완전한 전문가가 되려면 10년이 걸릴 거야. 그럼 난 50이 다 될 텐데.’ 

‘50이어도 충분히 전문가로 일할 수 있어.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어차피 50이 될 텐데?’


그다음 미팅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결국 그 업무는 내가 직접 하기로 하고 (그 업무에만 집중하면 1주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끝낼 수 있는 업무이다) 다른 업무를 맡겼다. 결과는 마찬가지. 또 다른 업무도 역시 마찬가지. 다른 팀원들이 그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업무를 짊어지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그는 그 어떤 팀원보다 많은 월급을 가져가고 있었다. 불공평했다. 열심히 일하는 팀원들에게 미안했다. 


게다가 다른 팀으로부터 그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대한 불만까지 계속 쌓여갔다. 언제나 ‘아니, 할 수 없어’ 혹은 ‘아니, 불가능해’라고 말하는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의 업무태도 및 성과에 대해 알고 있는 (이전 팀장들과 나로부터 이미 그의 악명을 오래 들었던지라) 부서장은 그의 해고에 대해 인사과와 구체적으로 의논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해고가 결정되었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내쫓기지는 않는다. 회사 근무 기간에 따라 설정된 기간 동안 월급을 지급한다. 10년 가까이 근속했기 때문에 회사는 그에게 매달 같은 월급을 1년간 지급해야 했다. 그가 석 달 후 재취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고는 결국 회사와 그,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된 셈. 


보통 일을 하지 않아도 월급이 나오니 이 기간에 여행을 다녀오거나 잠시 쉬다가 취업활동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10년 이상 일한 근속자들은 오히려 해고당하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에 등장할 수잔처럼. 


수잔은 사내 20 클럽 멤버였다. 즉, 20년 이상 근속했다는 의미. 퇴직금을 생각하며 해고되길 학수고대하며 3년 이상을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과도한 업무량과 계속되는 야근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삐쩍 마른 그녀의 건강이 무너지고 있었다. 끝까지 버텨내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미 번아웃 상태가 되었고 결국 붙잡는 회사를 뿌리치고 작년에 살기 위해 스스로 회사를 뛰쳐나왔다. 


친한 직장동료 사브리나가 우울한 표정으로 아이다가 오늘 해고되었다고 말했다. 둘은 모두 회사에서 15년 이상 함께 일했고 매주 금요일엔 수잔과 함께 커피와 아침을 먹는 것이 내가 입사한 이래 늘 목격했던 관례 같은 것이었다. 그 날 아침에도 세 사람이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을 먹는 걸 보고 인사를 했던 참이다. 그런데 아이다의 매니저가 바로 그날 해고 통보를 하며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해고 사실을 미리 통보할 필요 없이 적절하다 여겨지면 당일날 바로 해고할 수 있었다. 6명 정도 되는 지원 업무를 하는 팀 전체가 예상도 못한 채 하루아침에 해고당했다. 


20년 가까이 매일 출근했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더 이상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듣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어제까지만 해도 계속 함께 일할 거라고 생각했던 동료들은 조심스럽게 나의 이름을 쑥덕거릴 것이고 말도 안 된다며 내 편을 들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무능력에 대한 의심이 고개를 들지 않을까? 


내가 가장 빛났던 시간을 함께 보냈던 회사에 대한 배신감에서 오는 좌절감. 

정들었던 동료들, 내 손이 탄 책상과 컴퓨터를 떠나보내는 슬픔. 


이 모든 감정을 소화하고 자기 위안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그녀를 내쫓았다. 


아이다나 수잔 모두 여성이며 60세가 넘었다. 즉, 일반적인 해고 기준은 나이나 성별이 아니라 업무 내용이다. 담당업무가 해외로 아웃 소싱되거나 더 이상 필요치 않을 때 해고 대상자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씁쓸하지만 이윤 극대화라는 목적을 지난 영리 기업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아이다가 경험했던 방식이지 않았어야 한다. 해고 기준 및 해고 대상자는 이미 오래전에 선정되었을 것이다. 그 오랜 시간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은 채 해고 당일에 전달한다는 것은 회사와 함께 여러 해를 보낸 직원에 대한 의리가 아니지 않을까? 

그걸 목격하는 비대상자의 기분은 어떨까? 

더욱 열심히 일해서 계속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할까 혹은 이 회사는 언제든 나를 버리겠구나, 회사가 버리기 전에 내가 회사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할까? 

나는 후자였다. 기업은 그런 곳이었다. 


결심했다, 나는 오직 나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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