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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11. 2019

술이 달다

호주 직장 생활: 회식

'그렇게들 쳐다보지 말라고. 이건 그냥 재미로 하는 게임일 뿐이잖아!’ 

팀원들의 기대에 찬 눈빛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입안 가득 풍선껌 5개를 넣고 열심히 씹었다. 

풍선을 만들어 보려고 아무리 애써도 껌에는 아직 당분이 가득했다. 

잠시 후 바로 옆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분기마다 전직원이 크리스마스, 70/80 등 주제를 정해서 회사 내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이라고 부르지만 카페테리아의 커다란 냉장고에는 맥주와 와인이 한가득. 언제나 금요일에 점심 행사가 있었는데 12시쯤 시작해서 저녁 6,7시쯤 끝났다, 카페테리아에서는. 더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함께 근처 펍에 가서 2차를 시작했다. 


회사 건물 안에서 회식을 하다 보니 할 일이 있는 직원들은 잠시 점심만 먹고 책상으로 돌아온다거나 할 일을 끝내고 카페테리아에 가서 맥주나 와인을 마신다거나 혹은 아예 참석을 안 한다거나 직원 전체 회식이었지만 참석여부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었다. 물론, 참석률이 너무 낮은 부서의 부장들은 팀장들에게 시작할 때라도 잠시 참석하라고 눈치를 주기도 했지만. 


그런데 이번엔 주제가 올림피아드였고 부장이 마음대로 나를 선수단에 넣고 내 이름을 풍선껌 불기 종목에 넣었으리라. 게임이 있어서 이 날은 11시쯤 시작하였다. 게임이 모두 끝나고 본격적인 회식이 시작할 때쯤 나는 접시에 먹을거리를 담고 맥주 한 병을 들고 책상으로 돌아왔다. 오후엔 아시아 지역과 회의가 연달아 있는데 밀린 일 때문에 지난밤 회의 준비를 전혀 못했던 참이다. 누가 눈치라도 줬냐고? 전혀! 


팀워크를 높이기 위한 회식, 새로운 직원을 위한 웰컴 회식, 그만두는 직원을 위한 페어웰 회식, 해외에서 출장 온 동료들을 위한 웰컴 회식 등이 종종 있었는데 모두 점심이었다. 반주로 맥주나 와인을 하는 정도. 저녁 회식은 가고 싶은 사람만 가는 회식이라 초대장을 돌린 이에게 Reject를 누르고 ‘미안. 난 오늘 못 갈 것 같아. 선약이 있어’라고 답장하는 것에 부담이 없었다. 저녁 회식에 가더라도 마지막 버스가 끊기는 시간에 나와도 모두 쿨하게 보내줬다. 아! 버스 끊기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라서 6시 30분일 수도 7시일 수도 있다. 그러면 퇴근시간이 5시니까 1시간쯤 있다가 저녁만 먹고 나오는 셈. 


친한 직장동료들은 모두 술을 못하거나 술버릇이 너무 나빠서 스스로 끊어버린 친구들이라 애주가인 나는 퇴근길 친한 동료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호주에서 가끔 보는 한국 드라마도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금요일 밤 한국 회사의 친한 동료들과 천호동 쭈꾸미 골목길에 갔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환하게 반짝이는 간판들, 금요일 저녁 한잔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골목길, 전쟁터에서 한주를 함께 버텨낸 동료들. 

술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분위기에 취해서 어울리지 않게 “아, 느므 조으다. 이런 거 막 꿈꿨는데… 너무 좋아요” 하며 감탄을 연발했고 착한 동료들은 나의 바보 같은 말에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회식은 역시 친한 동료들끼리 해야 제맛.  

술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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