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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l 15. 2019

워라밸 인 시드니

호주 직장 생활: 어떻게 워라밸을 성취할 수 있을까?

내가 한국을 떠날 땐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많아져서 꽤 애를 먹었고 지금도 적응 중이다 (친구들도 모르는 단어들이 많은 걸 보면 어쩌면 나이 때문인지도..). '갑분싸', '마상', '맴찢'... 새롭게 생겨나는 낱말들을 위한 사전이라도 필요할 듯하다. 예를 들면, 국어사전 옆에 신생어 사전? 

그중에서도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된 말은 단연코 '워라밸'이었다. 추가 설명 없어도 한 번에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 한국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은 종종 호주의 워라밸은 당연히 한국보다 나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같은 부서에 킴이라는 친한 동료가 있었다. 그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하고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회사 근처의 짐에 들러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회사에 출근한다. 8시 50분쯤이면 살짝 젖은 머리를 하고 활짝 웃으며 굿모닝 하는 그녀를 볼 수 있다. 별다른 약속이나 점심 미팅이 없으면 우리는 12시쯤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1시쯤 돌아온다. 오후 5시가 되면 그녀는 아침에 보여준 환한 미소와 함께 "Good night. See you tomorrow, guys!" 하고 퇴근한다 (참고로 호주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가 기본 업무시간이다). 


퇴근 시간 운동하고 석양을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퍼스의 킹스 파크 (King's Park).


같은 부서에 다른 한 명은 오전 7시에 일어나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며 출근 준비를 하고 15분간 버스를 탄다. 8시 40분쯤이면 희미한 미소로 '굿모닝'하는 그녀의 피곤한 얼굴을 볼 수 있다. 오후 5시에 킴에게 밝게 웃으며 "Have a good night!"이라고 답하고 곧 모니터에 고개를 돌리고 미간에 주름을 잡는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하나, 둘 그렇게 보내고 고요한 사무실에서 자동으로 불이 꺼지는 저녁 7시, 9시, 11시가 되면 좀비처럼 남아있는 사람들과 돌아가며 사무실 밖으로 나가 화장실 옆에 있는 수많은 스위치 중 빨갛게 불이 들어온 스위치를 눌러 다시 사무실을 밝힌다. 그녀는 퇴근 후에도 집에서 새벽까지 온라인 상태일 때가 많다. 

그렇다, 그녀는 바로 나다. 


그렇다면 나만 그랬던 걸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5시에 칼퇴근을 하거나 1시간 정도 야근을 하고 6시에 퇴근을 하였다 하더라도 밤 12시에 온라인 상태의 동료들이 많았다. 그들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혹은 양육이라는 또 다른 업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일찍 퇴근하였을 뿐이다. 제2의 직장에서 업무를 끝내면 다시 노트북을 켜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피곤한 마음을 위로했던 퇴근길.


혹시 내가 다니던 회사만 그런 것 아닌가 하고 합리적인 의심을 품을 수도 있다. 회사 동료의 친구들 그리고 내 친구의 예전 동료들이 옮겨간 호주의 대표적인 회사들도 딱히 다를 게 없었다. 과도한 업무량과 야근에 짓눌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직종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의 이커머스 회사에서 일할 때, 우리 팀과 협업이 많은 다른 부서에 나와 같은 직급에 같은 업무를 하는 직원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정시 퇴근을 하였는데 같은 팀원들은 이에 대해 불만이 꽤 있었는지 술자리에서 종종 그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에 반해 우리 팀은 팀워크가 굉장히 좋았지만 야근을 하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다.


결국 워라밸은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을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시 퇴근하던 킴은 벌써 가냐는 냉소적인 농담을 보내는 동료들에게 늘 하던 답변이 있었다. 


"나는 저녁마다 참석해야 하는 수업이 있어. 회사가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그녀는 장기적으로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명확하게 알고 있고 그곳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회사가 그녀의 전부가 아니니까. 


워라밸은 스스로 지켜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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