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오 Jun 08. 2019

운전은 많이 해본 사람이 잘하겠죠

한국 vs 호주: 평등한 관계

한국에 돌아와 몇 달이 지나서야 장롱면허에게 걸맞은 이름을 되찾아 주기 위해 도로 운전연수를 받았다. 선생님은 60대 초반의 남성분이었는데 꼼꼼하게 알려주시는 점이 좋았다. 아무래도 5일 동안 매일 2시간을 운전하다 보니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하게 됐다. 


어느 날 아저씨는 “요새는 여자가 운전 더 잘해요. 운전하면서 담배도 피우고.” 

그 말은 성별과 전혀 관계없는 주제를 사용하여 여성을 비하하고 흡연 여성을 비아냥 거리는 말이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운전을 못한다는 기본 의식이 없었다면 운전이라는 기술을 두고 남녀를 구분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운전은 많이 해본 사람이 잘하겠죠.” 


한 달 전부터 가구 공방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으면 목수 될까 생각 중이라는 말에 8살 어린 친한 동생은 “여자는 너무 힘들어요. 좋으면 차라리 가구 디자이너 해요.”라고 말했다. 


호주에서 사는 동안 여자 치고, 남자 치고, 여자라서, 남자라서, 여자라면, 남자라면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생각해봤다.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는 직원들의 성비가 거의 50/50이었고 중간 매니저들은 여자가 더 많았다. 여자가 매니저라고 불편해하는 남자 직원이 있었을까? 없었다. 남자든 여자든 관리능력이 우수한 사람이 매니저가 되는 거니까. 내가 팀 매니저일 때 한 명을 제외하고 팀원이 모두 남자였지만 그들 모두 나를 매니저로 존중하였고 나 역시 그들을 팀원으로 존중하였다. 어차피 매니저와 팀원은 평등한 관계로 각자 의논하면서 맡은 업무의 최대 결과를 내는 것이 목적이니까 성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호주가 성차별 무결 지역은 아니다. 회사 이사진 구성을 보면 여전히 남성의 비율이 높고 정치계를 보아도 성비 불균형은 명백했다. 그러나 적어도 생활 속에서 피부로 느낄 만큼, 사람들의 무의식에 스며들어있진 않았다. 그렇기에 결국은 세대교체를 통해 이사진이든 정치계든 성비 불균형이 깨지지 않을까. 


호주로 처음으로 배낭여행 갔을 때 각각 거대한 배낭을 메고 여행 중인 커플을 보았는데 여자는 양손에 가방 2개를 더 들고 있었다. 남자는 들어줄까 라고 물었고 여자는 아니 괜찮아라고 답하고 그들은 그렇게 쿨하게 걸어갔다. 그 모습이 꽤 인상 깊었는데 이후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오래전에 만나던 전 남자 친구가 어느 날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결혼하면 내가 널 책임지고 잘 살 수 있을까?”

“결혼한다고 오빠가 날 왜 책임져? 오빠는 오빠 인생 책임져. 나는 내 인생 책임질 테니까.” 


여자가 남자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였던가? 

관계에서 보호자와 피보호자가 있다면 평등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호 존중이 아닌가?

약한 존재를 보호하는 것은 맞지만 적어도 약함이 여자의 디폴트 특성은 아니다.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

여자는 그렇게 앉는 거 아니야

요새는 여자가 더 공부를 잘해요

여자가 좀 꾸며야지

남자가 화장했어. 연예인인가?

여자가 너무 쎄

무슨 여자애가 남자 같아

남자가 왜 이렇게 여성스러워


남자든 여자든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되고 여자든 남자든 치마를 입었으면 지하철에서 앉을 때 속옷이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공부는 똑똑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이 잘하는 것이고 남자든 여자든 꾸미고 싶으면 꾸미고 꾸미고 싶지 않으면 꾸미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여자든 남자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틀에 가두지도 갇히지도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 

오겠지?


이전 18화 손님이 왕이로소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