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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06. 2019

미팅에서 왜 아무 말도 안 해?

한국 vs 호주: 사내 회의

한국에 돌아온 후 한 이커머스 회사에서 일하게 됐는데 금세 친해진 개발자 동료가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예전에 A회사 (한국의 대표적인 리테일 회사였다)에서 일할 때 회의에 들어가서 뭔가 생각이 달라서 의견을 제시하면 회의 끝나고 팀장한테 항상 깨졌어요.”

“아니, 왜요? 회의란 게 같이 의논하고 가장 좋은 결과를 내려고 하는 건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의견에 이견을 제시했다는 거죠. 자기 망신 줬다고 생각하는 거죠.”

“어이가 없네.”


그리고 그녀는 현재 회사는 외국인 매니저들이 많아서 그나마 이런 일은 없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의외였다. 

모두 같은 의견을 갖고 있고 가져야만 한다면 회의는 왜 하는 거지? 

그냥 이메일로 통보하고 말지? 

순간, 왜 예전 직장동료가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됐다. 


예전 직장동료 재닌은 아시아 지역 지사들에 글로벌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론칭하면서 회의를 하는데 너무나 고요했다고 했다. 회의의 목적이 정보전달이 아니라 각 지사들의 현재 프로세스와 문제점을 이해하고 이를 시스템 개발에 반영하는 것인지라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영국 출신의 그녀는 이를 계기로 동양인 (좀 더 정확하게 묘사한다면, 외국 생활을 하지 않은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생긴 듯 보였다. 재닌에게 이야기를 듣는데 그 편견이 스며있는 그녀의 말투가 불쾌했다. 

한국에 와서 동료에게 유사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설마 한국 직장의 현주소가 정말 이걸까라고 의문이 들었다. 


호주에서 일할 때 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은 곧 기여도가 없는 것을 뜻하고 그것은 동료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다. 미팅에 가면 늘 고개를 숙이고 경청할 뿐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는 동료가 있었는데 팀과 매니저에게 자기 일만 잘하는 사람으로 찍혀버렸다. 물론, 이러한 문화 덕분에 회의 중에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생기는 맹점도 있었다.


회의를 하면서 서로 의견이 다른 경우는 너무나 많았고 그럴 때면 언제나 보드에 마커로 쓰고 표를 그리면서 서로 의견을 조율해갔다. 이 작업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한마디로 미팅은 서로 같은 혹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이해시키는 과정을 통해 더 좋은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직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 역시 미팅에서 나보다 직급이 높다고 해서 이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의한 적은 없다. 도저히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경우에는 적어도 지시받은 대로 업무를 진행은 하지만 어떤 결과가 야기될 것이라 예상되는지, 그렇기 때문에 동의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려준다. 


같은 부서의 다른 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해외출장 중이었는데 매우 급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지원 요청을 받았다. 현지 시스템에서 글로벌 시스템으로 옮기는 프로젝트의 부속 프로젝트로서 현지 시스템의 데이터를 글로벌 시스템 데이터베이스로 옮기는 것이었다. 


하루는 미국팀과 스카이프로 미팅 중이었는데 나보다 직급이 3,4단계 높은 고위급 매니저들이 많았다. 그런데 데이터 이송 시기와 관련하여 이견이 있었다. 미국팀은 인력부족으로 인해 데이터를 월별로 나누어 3개월에 걸쳐 데이터를 이송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는 호주 고객들에게 최악의 고객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대로 계획이 진행되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설명하고 반드시 시기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말이 끝나자 말 그대로 미팅은 잠시 멈춤 상태가 되었다, 고요 그 자체. 

모두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들로, 그리고 이미 지연된 프로젝트 로드맵이 다시 수정되야만 한다는 것에 (이미 미국 본사 및 지사들의 임원진 승인까지 끝난 상황이라 로드맵 수정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곧 다시 정신 차리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로드맵 수정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미팅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누구나 발언할 수 있고 함께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열나게 토론하는 것. 


한국 직장이 아직도 직급이라는 벽에 막혀 좋은 아이디어를 놓치는 그런 비생산적인 곳이 아니길, 직장동료가 말한 경우가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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