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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07. 2019

어머니, 캐리어 좀 열어주세요

한국 vs 호주: 호칭, 개인 고유성의 상실

한 달 전쯤 가족여행을 위해 인천공항에 갔다. 인천공항에서 나는 막내 조카의 초록색 공룡 캐리어를 끌고 검문대를 지나는데 직원이 나를 불러냈다. 

“어머니, 캐리어 좀 열어주세요.” 


부모님과 조카를 데리고 롯데월드에 놀러 갔다. 매표소 직원은 나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피부과에 갔는데 간호사는 나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운전연수를 받을 땐 연수 선생님한테 “아이가 몇이에요, 하나? 둘?”이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당시 난 조카와 함께 있지도 않았고 조카의 물건을 갖고 있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국에서 ‘아주머니, 아줌마’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부정적 의미를 (이미 부정적 편견이 굳건하게 형성된 호칭이 되어버렸다) 피하기 위해 내가 불쾌하지 않도록 나를 ‘어머니’라고 불렀으리라. 즉, 그들의 눈에 나는 결혼을 하고 이미 자녀 한둘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 어떤 개인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았고, 실제로는 그 어느 조건에도 해당하지 않지만. 

호칭이 필요했다면 그 상황에 더욱 적절한 호칭이 있었을 것이다, 승객님, 손님 혹은 환자분.


아가씨

총각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


이러한 호칭은 개인을 그룹화시키고 그 그룹에 대한 통상적인 의미로 개인을 정의 내린다. 즉, 상대가 나를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상대가 나에게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에게 사람들은 자신이 그녀들에게 가지는 몇 초, 몇 분 만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아가씨, 어머니 혹은 아줌마라고 부른다. 그녀들에 대해 눈에 보이는 외모 외에 어떤 점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골똘히 생각해봤다. 호주에서 나는 어떻게 불렸던가? 

내가 낯선 이에게 들은 말은 딱 두 가지로 기억한다, Excuse me 혹은 Madam. 

거의 대부분 Excuse me라는 말로 낯선 이에게 고개를 돌렸고 Madam은 공항에서나 들었던 말로 기억한다. 그나마 Madam은 성별을 나타내지만 Excuse me는 성별, 나이, 직업, 결혼 유무, 자녀 유무를 전혀 나타내지 않는다. 


나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이에게 나는 언제나 중립적인(neutral) 사람이었다. 

나에 대한 정보가 많은 사람들에게도 난 언제나 나의 이름으로 불렸다. 한국친구들을 제외하고 누구도 나를 ‘언니,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고 나 역시 누구도 그리 부르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 나는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그룹화되었다. 나이는 어느 정도인지, 성별은 무엇인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그리고 그룹의 이미지로 나를 정의하고 그들의 시선 속에 나의 얼굴은 그 그룹에 대한 선입견으로 정형화되었을 것이다. 


귀국과 동시에 고유했던 나의 개인성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호주에 있을 때 내가 나의 노화를 인식하는 시간은 거울을 보는 시간뿐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뒤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인식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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