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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08. 2019

숙제를 하나도 안 했지만 만족하며 삽니다

한국 vs 호주: 인생 숙제

한국으로 귀국 후 한국지사에서 일할 때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면 신경 쓰지 말아요. 그런데 결혼하고 싶다면 아무래도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만드는 게 좋겠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결혼 생각은 그렇게 없는데, 왠지 숙제를 안 한 기분이에요.”라고 답했다. 내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결혼이 왜 숙제지? 종교적인 이유인가?’ - 나는 종교가 없어서 무지한 상태에서 나온 짐작이었다. 


이후 몇 달이 지나고 개인적인 일로 호주에 돌아갔다. 일을 끝내고 미뤄두었던 3주간의 호주 여행도 마치고 한국으로 출국하기 하루 전 친구 집에서 와인과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 호주와 한국 각국을 대표하는 술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운 조합인가. 


그중 한 명이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가 이번에 애를 낳았어요.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이제 숙제 다해서 후련하다고.”

“응? 숙제가 뭔데요?”

“정규직 직장을 구하는 거, 결혼하는 거, 아이 낳는 거.”

“어? 그럼 난 숙제 하나도 안 했네. 하하하!”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거들었다. 

“그러네. 언니 숙제했다가도 그만뒀는데. 하하!”

“그게 무언의 규칙 같은 거 같아요.”

“그런 게 규칙이면 난 모든 규칙을 다 부숴버릴 거야. 룰 브레이커가 될 거야!”

우리는 한참 웃었다. 


그랬다. 이 ‘숙제’라는 것이 예전 직장 동료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날 언니라고 부르는 두 번째 그녀는 친구의 부인으로 결혼은 했지만, 회사 다니다가 원하던 일을 하기 위해 퇴사하고 핸드메이드 주얼리 사업을 하며 고군분투 중이고 아이는 낳지 않아서 (앞으로도 낳을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두 개의 숙제는 안 했다. 

한국에 숙제를 모두 마친 친구를 가진 첫 번째 그녀는 한국 회사의 호주법인장으로 정규직 직장을 구하는 숙제는 했지만 다른 숙제들은 안 했다. 

나는 현재 숙제를 모두 하지 않은 상태이고 아직 그 숙제들을 할 계획은 없다. 

숙제를 끝내지 않은 우리는 모두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누가 나한테 숙제를 내주었는지 기억에 없는데 언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숙제들이 생긴 걸까? 

도통 모르겠다. 

세상에는 인구수만큼 다양한 색깔의 인생이 존재한다. 

숙제 알림장 같은 거 버려버리고, 자신의 색깔에 맞춘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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