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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Aug 16. 2019

생태계 파괴

한국 vs 호주: The winner takes it all

운전을 못하는 엄마의 전용 운전사로서 종종 하나로마트에 간다. 실은 마트에서 엄마에게 얻어먹는 분식이 참 좋다. 찹쌀 핫도그, 야채 크로켓, 떡볶이, 충무김밥, 잔치국수 등등 먹을 것 천지다. 게다가 시식용 음식과 시음용 음료로 입가심까지! 호주 마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상 (한국에 휴가 올 때마다 한국 마트는 언제나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우리는 간식을 먹고 나면 늘 쌀로 만든 빵을 파는 베이커리에서 파는 2천 원짜리 커피를 마신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분식을 먹고 (이날의 초이스는 떡볶이에 찹쌀 핫도그!) 커피를 마시러 빵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웬일인지 점심때인데 테이블이 많이 비었다. 지난번에는 자리 맡기가 꽤 힘들었는데 이상하다 하는데 옆에 새로 들어온 파리바게뜨가 눈에 들어왔다. 매장이 어찌나 크던지... 그리고 매장 앞에 떡하니 서있는 배너에는 '아메리카노 2000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너머 카운터 앞에는 카드를 목에 건 사람들이 줄을 섰다. 파리바게뜨 커피값이 원래 2000원이었나? 그럴 리 없었다. 


또 시작이다. 대기업의 생태계 파괴.


같은 가격의 커피, 다양한 종류의 빵, 서비스 교육받은 직원들, 제휴사 할인 혜택에 포인트 적립까지. 

그래,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대기업의 커피를 마실 것이다. 그렇게 소상공인, 영세업자들은 사라지고 파리바게뜨는 커피값을 2천 원에서 원래 가격으로 원상 복귀시킬 것이다. 

그때는 2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없다. 100% 쌀로 만든 빵도, 푸근하게 웃어주는 동네 아주머니 서비스도 사라질 것이다. 대기업의 독주를 비난하고 대기업의 횡포에 살기 힘들다고 하면서 이왕이면 대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렇게 작지만 개성 있는 상점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NSW Pyrmont에 위치한 호주의 Gelato Messina 매장. 여유로운 토요일 오후, 맛있는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사람들.




몇 달 전에 머리 염색을 하러 집 근처에 있는 헤어숍에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디자이너분은 스타벅스가 생겨서 다행이라며 커피 마실 데가 생겼다고 했다. 동네에 카페가 한두 개가 아닌데도. 


호주 대학에서 마케팅 수업을 들을 때 스타벅스 케이스 스터디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스타벅스가 유일하게 실패한 시장이 호주였는데 그 이유를 분석하고 토론하는 스터디였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현지 시장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채 미국식 스타벅스 마케팅을 고스란히 가져온 덕에 현지인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멜버른에서 대학생활 중이었는데 스타벅스 매장은 시내에 겨우 한 개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곳은 언제나 관광객이나 동양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지만 스타벅스는 물러나지 않았고 지금은 다른 나라만큼은 아니지만 점포가 늘어나 시드니 시티에 4개의 점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관광객이나 동양인 유학생들이 주요 고객들이다. 

왜 그럴까?

더 맛있는 커피를 더 저렴하게 살 수 있으니까. 


호주는 커피빈만 해도 현지 브랜드들이 강세이다. 내가 대학 재학 중일 때만 해도 이탈리아 커피빈들을 사용하는, 즉 바리스타의 실력으로 커피맛의 승부수를 두는 카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커피빈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실제 커피빈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빈을 수입하여 로스팅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대표적인 호주 커피빈을 사용하는 카페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여전히 바리스타의 실력에 따라 커피맛이 천차만별이지만. 


즉, 대기업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굴복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을 제공하는 제품을 구입하였기 때문에 현지 브랜드들이 더욱 다양해졌고 성장하여 카페 생태계를 지켜낼 수 있었다.


호주 NSW Marrickville에 있는 Double Tap에서 마신 라테와 카푸치노. 이미 한잔 마시고 너무 맛있어서 한잔씩 더 마셨다.




별빛이 반짝하는 저 머나먼 판타지 나라에서 온 녹색 인어가 전해주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커피, 에펠탑 앞에 있을 것 같은 빵집에서 먹는 것처럼 느껴지는 빵. 게다가 줄줄이 따라오는 다양한 혜택까지! 


기술 평준화 시대에 사는 소시민으로서 각양각색의 마케팅과 프로모션에 굴복하기 쉽겠지만.

마케팅이 만들어낸 편견과 거품을 제거하고 바라보았을 때 보이는 더 좋은 제품이 있다면 그 제품이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면 좋겠다.  

 

호주 NSW Barangaroo에 위치한 수제맥주 하우스 All Hands Brewery House. 퇴근 후 금요일 밤에 즐기는 크림에일이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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