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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14. 2019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이야기: 돌아오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건 기분조절장애였다. 

나를 갉아먹는 그 부정적인 감정들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들 힘드니까. 

다들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곰팡이가 슬고 썩은 속을 끌어안고 살고 있을 테니까. 

인생은 원래 슬프고 힘든 거니까. 


버스를 타고 가다가, 트레인을 타고 가다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문득문득 마음속을 파고드는 생각. 

'사고가 나서 이대로 사라지면 좋겠다. 안 되겠지? 같이 탄 이 사람들은 무슨 죄라고...' 


사고 뉴스를 보면서 또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각. 

'내가 저기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 불쌍한 사람들 말고, 나. 어서 죽어버리고 싶은 나.'


캄캄한 방안 피곤한 몸을 누운 침대 위에서 눈을 멀뚱멀뚱 뜨고 스며드는 생각.

'내가 죽으면 부모님은 너무 아프시겠지? 엄마는 너무 늙어버리겠지? 세상에 날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좋겠다.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아프지 않게...'


집에 돌아가는 길, 엄마에게 전화하는 시간. 

"왜 이렇게 목소리가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아직 저녁 안 먹어서 그래. 집에 가서 먹어야지."

"혼자 오래 있으면 우울증 걸릴 수 있어. 일만 하지 말고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고 그래."

"(이미 걸렸을지도 모르지...) 무슨! 걱정 말아. 집에, 무슨 일 없지?"

"응, 별일 없어. 똑같지, 뭐."

서로가 그리운 우리는 말을 아낀다. 가장 중요한 얘기들은 부러 빼어먹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만 이야기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에 비밀만 쌓여간다. 


"OO야, 전화상담 있으니까 그거라도 받아봐. 나 상담해주시는 분 좋은데 소개해줄까?"

"아니야, 나 괜찮은데? ㅋㅋ"

멀리 있는 친구는 내가 보내는 톡 행간을 읽었던 걸까? 

스스로 오랜 기간 우울증에 괴로웠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을 그냥 짐작했던 걸까? 

그래도 난 괜찮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괜찮지 않은 사람이 되고 있었다. 늘 화가 나 있었다. 회사 동료들이 다 미웠다. 그중 내가 가장 싫었다. 내 영혼을 꺼내어 보면 어글리 할 게 빤히 보였다, 분노, 짜증 그리고 우울 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까?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이 못난 나를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뼈저리게 그리웠다. 


날 태워버린 곳을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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