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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14. 2019

아무도 나에게 말하지 않는다 1편

나의 이야기: 엄마

"엄마, 아파트 문 비밀번호가 뭐였지?"

"왜? 너 어딘데?"

"나, 서울!"

엄마가 뇌수술을 한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게 별일 아닌 듯이 말했지만 도저히 호주에 있을 수 없었다. 미리 말씀드리면 안 된다고 할 게 뻔했다. 가족들 몰래 항공권을 예약하고 돌아왔다. 캐리어를 낑낑거리며 끌고 아파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더니 아무도 없다. 내일이 엄마 뇌수술이라 강화도로 가족여행을 갔다고 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하고 가족들을 기다렸다. 

집에 돌아와 내 얼굴을 본 엄마는 왜 왔냐고 하면서도 그리 싫지 않은 눈치다. 




다음날 아침 입원 수속을 하고 두 시간 뒤 엄마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로 들어가며 오빠와 나를 뒤돌아보던 엄마의 눈가에 걱정 어린 눈물이 살짝 스쳤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눈물은, 오빠가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병원 구석 벽을 바라보며 몰래 눈물을 훔쳤던 것. 그게 다였다. 그런 엄마의 눈이 촉촉했다. 별 것 아니라 들었던 이 수술에 갑자기 겁에 덜컥 났다.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고 책을 읽었지만 4시간 동안 한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4시간 걸린다던 수술은 어느덧 2시간이 더 지났다. 수술실 앞에 걸린 TV 스크린은 엄마 이름 옆에 '수술중' 이란 걸 알려주고 있었다. 어느덧 수술은 끝나고 엄마가 침상에 누워 머리에 붕대를 감은채 나타났다. 곧 엄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우리는 약속된 시간에만 엄마를 볼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엄마는 일반병동으로 옮겨졌고 이제야 엄마 얼굴을 맘껏 볼 수 있었다. 네이버가 알려준 혹시나 있을 부작용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병문안 온 모든 이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엄마는 내가 아는 엄마였다. 한숨 놓고 편하게 책이나 보면서 엄마 곁을 지키고 있었다. 


3일쯤 지났을 때였을까? 새벽에 엄마가 깼다. 엄마는 너무 배가 고프다고 밥을 달라고 했다.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막내 이모가 싸다 준 입맛 도는 겉절이 김치와 조미김으로 간단하게 쟁반을 채우고 엄마의 허기를 채워드렸다. 엄마는 식사를 마치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하늘, 고층 아파트, 그 밑에는 새벽길을 쌩쌩 달려가는 자동차들...

"OO야, 여기가 어디야? 광화문인가?"

 순간 내 심장이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다. 그 쿵하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한참 아무 말 없이 엄마만 바라보고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침상 위에 앉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엄마. 

"응? 아니야. 여기 세브란스 병원이잖아."

난 아무렇지 않은 척, 별일 아니라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소용돌이치는 내 마음과 하얘진 머릿속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다음날 아침, 엄마는 병원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는 나에게 물었다.

"OO는 괜찮아? 걔 수술 잘됐나.. 큰일이다."

아프지도 않은 며느리의 안부를 물으며 수술은 잘 되었는지 궁금해하면서..

당신 며느리가 아파서 우리가 병원에 있는 걸로 착각하고 계셨다. 

"응? 괜찮아. 괜찮아."

침착하게 대답하며 엄마의 침대 각도를 조절해주는 척 침대 밑으로 나를 숨기고 울었다, 소리 없는 통곡을 하며.

 



엄마는 점점 안 좋아졌다. 특히 아무도 없는 밤, 엄마 곁에 나만 있는 밤. 그때가 가장 심했다. 

나만 보는 엄마...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 

그게 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내 세상이 와르르 부서졌다. 

병원 앞 어두운 골목길에서 벽에 기대어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주먹으로 가슴을 쳐서 멍이 들면 안에 있는 내 마음은 덜 아파지려나.. 

세상 모든 것이 의미를 잃었다. 

부서진 세상에는 오직 엄마만 있었다. 


나는 먹을 수도 잘 수도 없었다. 

결국 병이 나고 말았다. 독감이었다. 엄마 곁에 있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단다. 

뇌혈관 수술을 한 엄마에게 기침은 독약이었다. 


오빠가 급히 월차를 내고 새벽에 병원에 왔다. 

내가 간호사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 엄마 곁에 오빠가 있었다. 

오빠가 엄마 손을 잡고 울었다고 한다. 

오빠도 나만 보는 엄마를 보았다고 한다. 

무뚝뚝한 오빠의 눈물이 깊이 잠든 엄마를 깨웠다. 


그래서 엄마의 기억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엄마는 수술이 끝난 시간부터 내가 엄마 곁을 지킨 1주일의 기억이 없다. 


"엄마..."

엄마 손을 잡고 흐느끼던 오빠 얼굴이 수술 후 엄마 기억의 시작이다. 


나의 엄마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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