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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14. 2019

아무도 나에게 말하지 않는다 2편

나의 이야기: 아빠

공항 밖으로 나와 한숨 크게 들이마신다. 그리웠던 0도 아래의 공기. 볼을 스치는 차가운 공깃날이 좋다. 

어제만 해도 40도 넘는 뜨거운 기운에 녹아버릴 것 같았는데.

커다란 캐리어를 공항버스에 싣고 집으로 향한다. 

반짝거리는 불빛들, 겨울의 차가움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들, 강남역은 늘 살아있다.  

한국에 올때면 언제나 장거리 비행으로 노곤했던 내 몸을 깨우고 곧 가족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을 깨어주는 곳.


창 밖으로 버스가 멈추기도 전에 나를 찾는 엄마가 보인다. 버스에서 내리고 엄마는 캐리어를 내리기도 전에 나를 꼭 안는다. 나는 웃음기 가득한 소리로, "엄마, 잠깐만. 캐리어 좀 빼고." 말한다. 

공항버스 운전사분께 캐리어를 전해받는데 오빠가 옆에 선다. 

"어? 웬일로 오빠가 나왔어? 아빠는?"

"으응. OO이가 오늘 고모 온다니까 고모 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나왔어."

"아, 그래?"

"고모!"하고 품안에 안기는 귀여운 조카의 통통한 볼을 만지고 꼭 안아줬다. 




드디어 집에 들어간다. 

"배고프지? 엄마가 너 좋아하는 김치찌개 해놨어." 하고 주방으로 가는 엄마 뒤로 "응! 나 김치찌개 엄청 먹고 싶었는데."하면서 캐리어를 현관 문 옆 내 방에 들여놓았다. 

외투를 벗고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그 곳에 삐쩍마른 아빠가 앉아있었다. 이렇게 마른 아빠를 본 적이 없다. 

"아빠! 왜 이렇게 말랐어?"

아빠는 기운없이 나를 바라보며 "어, 왔어?" 한다.

엄마가 주저하며 말문을 연다.

"으응... 실은... 아빠가 한달 전에 위암 수술했어."

위암 위치가 안좋아서 위를 완전히 잘라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머리가 하얘졌다. 


얼마 전 전화받는 아빠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아빠, 목소리가 왜그래? 감기 걸렸어?"

"응, 감기 걸려서 그래."

"에구, 겨울이라 감기 걸렸구나. 나이들면 건강 조심해야해. 약은 먹었어?"


몇달 전에 아빠 칠순이라 아빠가 좋아하는 스페인 여행다녀오시라고 여행비 보내드렸는데... 

그래서 사진 보내달라는 내 독촉에도 엄마는 깜박 잊은 것처럼 계속 미뤘던 거였다. 보내줄 사진이 없었으니까...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에는 엄마가 나를 더 간절하게 기다렸다. 내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나는 바보같이 엄마가 점점 연세가 들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엄마는 힘든 엄마를 꼭 안아줄 딸이 보고팠던 거였다. 


아빠도, 엄마도, 나는 아무도 지켜주지 못했다. 

내가 가장 필요한 때 나는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한국에 휴가 온 사이 일본에 가겠다고 일본여행을 예약해뒀던 참이었다. 


볼 수 없는 나에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쉽게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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