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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l 02. 2019

손님이 왕이로소이다

한국 vs 호주: 서비스 선진국 vs 서비스 후진국

호주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두 명이 한국에 두 번째 방문을 했다. 한국에서 살을 에는 3월의 꽃샘추위를 2주나 겪고도 또 아쉬워하다 저렴한 에어텔 패키지를 보자마자 예약하고 휴가 신청을 해버렸단다. 두 번째 한국 방문 때는 다행히 나도 한국에 휴가 온 참이라 약속을 하고 호텔로 갔다. 연남동으로 가는 길에 나는 어제 어디를 다녀왔는지 물었고 그들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호텔에서 푹 쉬었다는 것이다. Wi-fi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미뤄뒀던 드라마들을 몰아봤다는 것. 게다가 교통이 얼마나 편리한지 한국어라고는 '이거 주세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밖에 몰라도 공항에서 도착한 이래 줄곧 택시 한번 타지 않았단다. 

그래, 한국은 참으로 편리하고 친절하다. 


내가 탈 버스가 언제 도착할지 미리 알려주고, 줄을 선 식당이어도 휴대폰 번호만 입력하면 다른 볼 일을 보고 때를 맞춰 돌아올 수 있고, 버스 안이고 카페 안이고 상점 안이고 어디서나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고, 온라인 주문을 하면 다음날 바로 받아볼 수 있고,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주문하면 우리가 다른 볼 일을 보는 사이 설치를 마치고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 게 눈에 빤히 보이는데 피곤한지도 모른다는 듯 친절함만을 남기고 간다. 


밤늦은 시간에도 환한 서울


호주에서 내가 살던 동네는 가장 가까운 기차역에서 30분을 걸어야 하는 아파트 단지였는데 집 근처까지 오는 버스가 딱 하나였다. 출퇴근 시간에는 15분, 20분마다 왔는데 그마저도 낮시간에는 30분 혹은 1시간마다 오고 회사에서 출발하는 막차시간은 저녁 6시 30분이었다. 어느 일요일, 날씨가 화창해서 기분이 좋아(비록 회사 가는 길이었지만) 버스 시간보다 10분 일찍 나가 벤치에 앉아있는데 도착시간을 15분이 넘어도 버스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30분 넘어오는 경우도 있어서 혹시나 하고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데... 이런!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1시간을 걸어 회사에 도착했다. 

이뿐인가? 인기 있는 레스토랑에 가면 번호가 줄줄이 적힌 종이 위에 내 이름과 일행 인원수를 쓰고 상점 앞에서 무작정 순서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가 꽤 있었지만 속도는 느렸고 온라인 주문을 하면 며칠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했다. 한 번은 침대를 주문했는데 1주일 후에 온다는 것이다. 건장한 남자 2명이 침대와 매트리스를 베드룸에 던져놓고 그냥 가버렸다. 나는 혼자서 낑낑대며 침대와 매트리스를 정리하고 거실과 베드룸에 그들이 남기고 간 신발 자국을 청소해야 했다. 새로 이사 들어간 아파트에서 인터넷 신청을 하면 3주 후에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호주 Kirribilli에 있는 The Botanist - 주말에는 라이브 공연을 볼 수 있다.


게다가 호주에 오면 가장 적응하기 힘든 것은 아마도 일찍 문을 닫는 상점 들일 것이다. 사무실 주변의 카페들은 오전 7시에 문을 열지만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 그뿐인가? 대부분의 상점들은 오후 5시나 6시 사이에 문을 닫기 때문에 쇼핑데이에 저녁 9시까지 문을 열어주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그나마 문을 연 곳은 술집, 식당 그리고 마트들. 스트레스로 쇼핑욕이 솟구쳐도 꾹꾹 눌렀다가 목요일에 폭발시켜야 하는데 그게 뭐 마음대로 되나? 그전에 이미 식어버리면 뭐...


왜 그럴까? 한 번은 호주 친구한테 물어보니 저녁은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상점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퇴근해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자기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시드니의 Vivid 축제 때 Rocks에 잠깐 오픈한 이벤트형 팝업 pub


그랬다, 호주는 참으로 불편한 서비스 후진국이었다. 호주 소비자들은 불편함을 수용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서비스 후진국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것.  


한국의 극심한 경쟁구도로 기업들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고 소비자의 서비스 기대치는 계속 올라갔을 테고 결국 서비스 왕국이 되었을 테다. 그런데 이게 참 서글프다. 


손님이 왕이라는 마인드는 소위 갑질 하는 진상 손님들을 생산했고 덕분에 서비스업 종사자분들은 계약서에 사인할 때 약속하지 않은 감정노동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뿐인가? 대기업의 서비스 수준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나지도 않는 수익을 (만약에 있다면) 대패 깎듯이 얇게 계속 계속 깎아내야 하는 소상공인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맞출 수 없는 서비스 수준에 결국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대기업으로 향하겠지.  



*시드니는 목요일 하루지만 멜버른은 목요일, 금요일 이틀이라 처음 시드니에 왔을 때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시드니야말로 상업이 발달한 도시인데 어째서 하루만 쇼핑데이이지? 아! 금요일에는 모두 술을 마셔야 하니까! 그렇게 결론지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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