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오 Jun 08. 2019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없었던 건 누구 때문이었을까?

호주 생활: 괴리감

대학교 학과 수업은 일반적으로 수강과목별 2시간의 강의와 1시간의 튜토리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튜토리얼은 강의 시간에 배운 주제를 토대로 케이스에 대해 토론하는 형식이었는데 그 당시 나의 영어회화 수준은 형편없었기에 단답형이 아닌 이상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나의 침묵은 다른 학생들에게 무지로 해석되었는지 학기초 어느날 한 여학생이 나를 앞에 두고 학과 친구들과 이야기를하며 자신은 열심히 공부하여 어렵게 대학에 왔는데 유학생들은 돈만 주면 대학에 온다며 핀잔을 주었다. 얼굴은 붉게 달아왔지만 나는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그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고 틀렸다고 믿었더라도 형편없는 영어로 반박했다면 그녀의 말에 설득력을 더해줄 뿐이었을 것이다. 학과 공부와 아르바이트, 영어공부로 도서관에서,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24시간 컴퓨터실에서 치열하게 살던 나의 노력에 그녀가 ‘퉤’하고 침을 뱉었다 (이후 난 학과에서 학점 상위 10명의 한명으로 우수 졸업생 후보에 올랐다. 결국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룹과제를 할 때 역시 현지인들끼리 유학생들끼리 그룹을 이뤘다. 종종 현지인들과 유학생들 함께 그룹을 이루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회사에서도 현지인들과 이민자들이 ‘동료’를 넘어 ‘친구’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나 역시 자주 어울리는 친구들의 출신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영국, 미국, 남아공화국, 인도, 필리핀 등 다양했지만 모두 1세대 혹은 1.5세대 이민자들이었다. 


회사에서 만난 친구 중 앨런이라는 매니저가 있는데 영국출신으로 그는 독일지사 CFO로 역임하다가 호주로 이민오기 위해 호주지사 CFO로 옮겨왔다 (참고로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지만 영국 공인회계사가 되어 커리어를 쌓아 CFO의 자리까지 올랐다.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가 이직한 후에도 종종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는데 흥미롭게도 영국이민자인 앨런조차도 호주 현지인들과 깊은 관계의 친분을 쌓는 건 어렵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학교가 끝나면, 퇴근시간이 되면, 각자의 영토로 돌아가 따로 놀았다. 그런데 같은 회사에 한국인 동료가 한 명 있었는데 그녀의 친한 친구들은 모두 호주 현지인들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선을 그었던걸까? 

아니, 모두들 선을 그어놓기는 했던걸까? 

어쩌면 긋지도 않은, 그래서 보이지도 않는 선에 집착했던 건 아닐까? 

대학에서 시작된 편견으로 벽을 쌓고 나를 보호해준다며 집을 세우고 나를 가두었다. 


그렇게 현지인, 이방인이라고 이분법으로 나누어 놓은 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가질 기회를 얼마나 많이 놓쳤을까?

이전 09화 Oh, O Week!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