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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06. 2019

안녕, 멜론

호주 생활: 과일 장보기

아삭아삭한 식감과 달콤함을 가진 참외를 좋아한다. 

호주에는 참외가 없다. 

한국 슈퍼마켓에 가면 볼 수 있는데 매우 비싸다. 딱 한번 사 먹었는데 물컹한 식감 때문에 이후 다시는 먹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가 참외 대체품을 발견했다. 

“언니, 이거 저번에 사 먹었는데 정말 맛있어요. 참외랑 맛이 똑같아요.” 

친구가 가리킨 곳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멜론처럼 생긴 녀석이 반짝거리는 샛노란 외피를 빛내며 앉아있었다. 한번 사서 먹었더니 그녀 말이 맞았다. 참외처럼 달콤했다. 아삭한 식감은 참외에 비해 조금 부족했지만 식감 역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 노란 녀석이 더 좋았던 이유는 이름이었다. 보통 슈퍼마켓 가판대에 멜론 녀석들을 한 군데 모아놓는데 이 친구는 이름이 hello melon이었다. ‘안녕 멜론’이라니! 얼마나 귀여운 이름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멜론들을 모두 좋아하는데 이름도 모두 마음에 든다. 


Rockmelon: 돌 멜론

Honeydew: 꿀 이슬

Hello melon: 안녕 멜론

Watermelon: 물 멜론, 아니.. 수박.. 음.. 얘는 뭐… 


호주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다양한 과일을 판다. 열대아 기후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민지가 많다 보니 소비자 니즈에 맞춰 본래 현지에 없던 과일, 채소를 생산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두리안, 패션 프룻, 단감, 일본 배, 석류, 무화과, 블루베리, 라즈베리, 블랙베리, 스트로베리, 블랙 플럼, 슈가플럼, 레드 플럼 등등 종류도 여러 가지라서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져 반가워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과일이나 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은 대략적으로 세 그룹으로 구분될 수 있다. 

대형슈퍼마켓, 과일가게, 아시안 식품점 (아시안 식품점이라 쓰고 중국 식품점이라 읽는다, 대부분 중국인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대형슈퍼마켓으로는 대표적으로 콜스 (Coles)와 울워스 (Woolworth)가 있는데 아이지에이 (IGA)도 꽤 있지만 이들 둘에 비할 수 없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콜스와 울워스 (호주 사람들 역시 말 줄이는 것을 좋아해서 보통 간단하게 Woolies라고 부른다. 맥도널드를 Macca’s, 맥카즈, 라고 부르는 것처럼)를 가는데 어지간한 물품은 다 구비하고 있다. 동네에 한두 개 정도 있는데 (내가 살았던 채스우드는 주민도 많고 유동인구가 많아서 세 개가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동네 슈퍼마켓 수준이 아니라 대형마트와 비교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이 두 대형마켓이 시장 전체를 거의 점유하고 있고 나 역시 대형마켓을 애용했지만 주말엔 동네 과일가게에 가곤 했었다. 더 다양한 과일을 구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신선했다. 예를 들면, 콜스나 울워스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블랙 플럼이나 슈가플럼을 매번 구매할 수 없다.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고. 하지만 동네 과일가게엔 달고 신선한 이 녀석들을 가판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시안 식품점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각종 아시안 식료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K-pop, K-drama가 엄청난 인기라서 아시안 식품점에 가면 어지간한 한국 식료품은 구매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식품점보다 가격이 살짝 비싼 편이고 아무래도 한국 식품점만큼 다양한 종류를 구비하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동네마다 아시안 식품점은 거의 하나씩 있기 때문에 편의를 위해 종종 이용하게 된다. 


한국 식품점들은 한국인 거주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스트라스필드 (Strathfield), 이스트우드 (Eastwood), 채스우드 (Chatswood), 에핑 (Epping) 등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캠시 (Campsie), 웨스트 라이드 (West Ryde) 등 많은 지역에서 한국 슈퍼마켓을 하나 정도는 발견할 수 있다). 스트라스필드에는 소규모 슈퍼마켓이 많고 이스트우드에는 대형 한국 슈퍼마켓들이 꽤 있다. 채스우드는 이들에 비해 수도 적고 규모도 작은 편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홈부쉬 (Homebush)에 있는 코마트 (Ko-mart)였다. 다양한 상품이 구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차도 가능하고 주류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물론 나는 장롱면허에다가 차도 없고 거리도 멀어서 친구가 갈 때 주기적으로 끼어가 미리미리 대량으로 재고를 쌓아두었다).


아쉬운 점은 언제나 한국보다는 늦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허니 머스터드가 한국에서 열풍을 불었을 때 우린 구경도 못했다. 열풍이 한풀 꺾여서야 맛을 볼 수 있었다. 꼬꼬면이 한참 인기였을 때도 마찬가지. 인터넷 TV로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맛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몇 달이 지나서야 맛을 볼 수 있다는 그 기다림. 생각보다 애가 탄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에야 이런 경우로 애가 타진 않지만 나의 ‘안녕 멜론 (hello melon)’은 이제 ‘안녕 멜론 (goodbye melon)’이 되어서 그게 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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