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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07. 2019

세 번의 응급실 1편

호주 생활: 의료서비스

멜버른에서 한 번, 시드니에서 한 번, 그렇게 호주에서 두 번 교통사고를 당했다. 

음, 당했다는 말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 같다. 모두 나의 과실이었기에 (두 번 다 무단 횡단하다가 차에 치였다). 평생 한 번도 어려운데 두 번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다치지 않고 잘 살고 있다는 건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겨울날 아침 멜버른에서 어학원으로 가는 길, 고민거리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차가 오는지 살펴보지도 않은 채 도로로 뛰어들었고 세단에 치였다. 

차의 앞 범퍼가 내 왼쪽 무릎과 부딪혔고 상체는 그대로 미끄러져 차 앞유리와 부딪힌 후 몸이 날랐다. 순간 하늘이 핑핑 돌면서 나무가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하다가 갑자기 가방이 내 몸을 확 끌어내리더니 도로 위로 떨어졌다 (매일 무거운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나의 라이프 세이버가 되어줄지 몰랐다. 큰 은혜를 입어서인지 10년이 넘은 지금 사용하지도 않는 이 사전을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땅에 떨어진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건 오직 차갑게 파란 하늘과 차 범퍼 그리고 깨진 앞유리.

‘꿈인가?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잖아. 꿈일 거야...’ 

믿을 수 없었다. 


꿈이라 믿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스팔트의 차가움이 너무나 생생하게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제야 살아보겠다고 목소리에 온 힘을 넣어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그것도 영어로. 꽤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운전자가 차문을 열고 내려 날 봐주기를 기다렸다. 몇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사실 1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을 테다 (내가 느끼기엔 한참 후에야 운전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듣기로는 운전자가 사람을 쳤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충격으로 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얼마 후 한 여자가 눈앞에 나타나 나에게 말을 걸며 내가 의식은 있는지, 영어는 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웅성웅성하는 말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계속 나와 눈을 맞추며 괜찮다고 자기가 간호사라고 곧 구급차가 올 거라며 나에게 말을 계속했다. 잠시 후 누군가 그녀에게 담요를 전했고 그녀는 차가워지는 내 몸 위에 담요를 덮어주었는데 그녀의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그녀가 구급대원에게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때서야 그녀가 간호사이고 출근하던 길에 나를 보고 달려온 걸 알았다. 


내 몸이 하늘로 날았다가 아스팔트로 떨어져서인지 응급실에선 MRI, CT 등등 정말 많은 검사를 했다. 다행히 범퍼와 부딪힌 왼쪽 다리가 삐고 타박상과 찰과상 외에 모두 괜찮다며 퇴원하라는 말에 안심하며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집에 돌아갔다. 

이때만 해도 안도감과 아침에 만난 선한 사마리안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곧 다가올 충격적 소식을 알지 못한 채. 


절뚝거리며 어학원을 다닌 지 3주가 지난 어느 날, 셰어하우스에 내 이름으로 편지가 하나 도착했다. 

‘나한테 올 편지가 없는데…’ 

봉투를 여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응급차 및 알 수 없는 각종 단어들 옆에는 비용이 줄줄이 쓰여 있었고 총비용은 100만 원이 넘었다. 걱정하실까 봐 부모님께는 교통사고가 난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100만 원이 들어올 곳도 구할 곳도 전혀 없었다. 결국 어학원 양호선생님께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학생 의료보험으로 전액 보상될 수 있었다. 


호주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에게 사립 의료보험 가입은 필수 사항이라 학생비자를 신청할 때 가입서류 (혹은 보험 카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저렴하지 않은 보험비에 막상 가입할 때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는 것. 

역시 세상 일은 모를 일이다. 


두 번째 사고는 시드니에서 일할 때 출근길 아침에 벌어졌다. 

역시 무단 횡단하면서 골똘히 딴생각을 하다가 오는 차를 살피지 않았다. 

그건 벌이었다, 이미 한 번 교훈을 받았으면서 같은 짓을 하는 이에게 주는 벌! 

이 때는 차 정면으로 치인 것이 아니라 차바퀴에 발을 밟히고 차의 측면에 치여 몸이 돌아서 쓰러진 경우라 이전과 같은 검사는 필요치 않았다. 내가 고통을 호소하는 양팔과 오른쪽 다리를 엑스레이로 찍었는데 SUV 바퀴에 밟힌 오른발이 부러졌다. 어쩐지! 아스팔트에 쓰러지자마자 오른발이 떨어질 것처럼 아프더라. 

이렇게 간단하게 진단이 끝났는데 오전 9시 반쯤 입원한 응급실에서 나온 건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한 의사는 부러진 위치가 좋지 않다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다른 의사는 깁스로 충분하다는 의견이었다. 수술을 받을 경우 만약을 대비하여 모든 음식료 섭취가 금지되어 내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가고 친구들은 할일없이 몇 시간을 대기모드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밤 10시가 되어서야 30분 만에 깁스를 끝내고 퇴원할 수 있었다. 

그 오랜 시간 그들은 열띠는 토론을 했던 건지, 나를 잊고 퇴원했다가 결국 쉽게 동의를 했던 건지, 다른 급한 환자들로 인해 내가 잊혔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친구들은 분노했지만 나는 그저 집에 돌아가서 쉴 수 있음에, 이제 배고픔을 달랠 수 있음에 안심했다. 


이 당시 영주권이 있는지라 국민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상태였다. 매주 외래진료를 갈 때마다 마음을 졸이며 언제 의료비용 폭탄을 맞을지 떨었는데 다행히 나에게 날아온 건 8만 원짜리 무단횡단 벌금 티켓뿐이었다. 알고 보니 인명사고로 인한 보행자 치료비는 자동차보험 필수 항목이었고 사고의 원인이 보행자라 하더라도 보상되는 항목이었다. 


결국 나는 정말 운 좋게도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했지만 내 몸도 통장도 지켜낸 셈이다 (사실 완전히 몸을 지켜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많이 걷거나 비가 올 때면 범퍼에 부딪힌 왼쪽 무릎과 SUV에 밟힌 오른쪽 발목과 발이 쑤셔온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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