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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07. 2019

TMI와 오지랖, 대화의 기술

호주 생활: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기

대학시절 친했던 룸메이트가 혼자 펍에 갔다. 술 마시다가 혼자 온 여자와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처음 보는 내 친구에게 자신의 남자 친구와 어떤 상태인지까지 속속들이 자기 얘기를 해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렇다고 술을 많이 마셔서 숙취에 자기 한탄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낯가림이 심했던 나로서는 처음 보는 여자와 한참을 대화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 내 친구조차도 이해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고 각자 직장인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친구를 만나러 멜버른으로 여행을 갔고 함께 수제 맥주로 유명한 펍에 갔다. 담배 피우러 나가는 그녀가 심심할까 봐 잠시 따라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금요일 밤이었으니 퇴근 후 한잔하러 왔었으리라) 친구에게 불을 빌렸고 둘은 또 수제 맥주와 근처 핫플레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더라.


한가하게 동네길을 산책하다가 지나가는 할머니와 동네에 새로 생긴 상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처음 보는 사람과 커피맛은 어떤지 음식 맛은 어떤지 그리고 어떤 카페가 좋더라 등등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나에게 어느덧 이런 모습은 너무나 익숙했다.


말 그대로 TMI (Too much information)와 오지랖의 조화. 호주인들에게 이 조화는 대화를 위한 기본 술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프라이버시를 그렇게 중요시하면서 사소한 개인사를 쉽게 공유하는 호주 사람들을 보면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매우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스스로 공유하지 않는 정보를 캐내려는 것은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행위이지만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네가 나의 공간에 여기까지 들어와도 괜찮다는 무언의 허용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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