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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07. 2019

세 번의 응급실 2편

호주 생활: 의료서비스

세 번째로 응급실에 가게 된 건 사고가 아니었다. 


호주는 원체 건조해서 피부에 수분 공급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바디로션은 바닥을 드러냈지만 야근이 계속되는 중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슈퍼마켓에 가겠다고 귀갓길을 멀리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붉은 돌기가 피부 위에 오돌토돌 생기기 시작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간지러울 때 습관적으로 긁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 보니 긁었던 부위가 점점 커지면서 피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라도 병원에 갔어야 했다. 점심시간도 없이 바쁜 시기에 무슨 병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그냥 두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놈들은 점점 면적을 확장했다. 마침 부활절 휴일 (호주에선 12월의 크리스마스와 4월의 부활절이 가장 큰 명절이다)이라서 하루 더 월차를 내 일반의를 찾아갔다. 한국은 거의 대부분이 인턴기간을 끝내고 전문의 과정인 레지던트를 마치고 전문의가 되는데 반해 호주는 전문의 과정을 마치지 않은 일반의 (영어로 General Practitioner이지만 줄여서 GP라고 부른다)가 많다. 일반의에게 우선 진료를 받고 추천서를 받아야 전문의(Specialist) 병원이나 종합병원에 갈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전문의에게 바로 갈 수도 있지만 그러면 국민의료보험을 통해 공제받을 수 있는 금액에 줄어든다. 


한국인이 많다 보니 한국인 일반의가 있지만 예약하기가 하늘에서 별따기다. 일주일 전에 예약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때는 한국 의사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의 모든 병원 진료 예약이 불가능했다. 아마도 부활절 휴일 사이에 휴가를 떠난 의사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결국 물어물어 다른 동네에 있는 예약 가능한 병원을 찾아가 1시간 넘게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나의 상태를 보고 피부병이 발병했다가 2차 감염된 상태라며 페니실린이 들어간 항생제와 연고를 처방해줬다. 

웬걸?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온몸에 퍼져갔다. 며칠 후 너무 급한 마음에 동네에 있는 한국 병원을 찾았는데 다행히 진료해주셨는데 어쩌면 내가 페니실린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며 페니실린이 포함되지 않은 항생제를 처방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악화되더니 얼굴, 귀, 두피까지... 피고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부분은 오직 손바닥과 발바닥뿐이었다. 


토요일 아침,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한국 일반의를 찾아갔고 내 상태를 보더니 응급실에 가라고 추천서를 써주셨다. 그렇게 두 번째 교통사고로 찾아갔던 종합병원의 응급실을 다시 찾았다. 분리된 진료실 침대에 누워 잠시 기다리니 인턴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가 들어왔고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는 혹시나 전염병일까 염려된 건지, 아닌척했지만 그의 두려움이 눈에 빤히 보였다. 2시간 정도 지나니 전문의가 들어왔고 그는 상태를 확인하고 현재 먹고 있는 처방약을 포함하여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집에 돌아가도 좋다고 하면서 상태가 너무 악화되면 다시 오라고 했다. 전문의가 나가고 인턴처럼 보이던 남자가 들어오더니 전문의의 귀가하라는 지시에 사뭇 놀랐는지 전문의의 처방을 되물었다.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주면서도 장갑을 끼고 있는 상태였지만 혹시나 전염될까 봐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절망했다. 피고름으로 가득한 몸을 보니 내가 점점 좀비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점점 더 심해진 상태와 효과도 없는 같은 처방을 내놓는 호주 의료진에 진절머리가 났다. 더 이상 그들을 믿을 수 없었다. 결국 바로 다음날 오전에 출발하는 항공권을 예약하고 (이코노미 좌석이 이미 매진이라 프리스티지 좌석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는 너무 간절해서 눈물을 머금고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아쉬운 건 피부병 때문에 그 좋은 서비스를 거의 누리지 못한 것이다) 부모님께 귀국 한다는 통보를 한 뒤, 매니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일요일 아침, 그렇게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왔고 세브란스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몇 가지 검사하더니 결국 내게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았다. 그때의 나에겐 스테로이드가 필요했다. 

그런데 왜 호주 의료진은 이걸 투여하지도 투약하지도 않았을까? 스테로이드는 단시간에 나쁜 바이러스를 죽이지만 좋은 바이러스도 죽인다. 그래서 호주는 되도록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증상은 바로 호전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호주 의료진이 맞았던 걸까? 적어도 이런 경험을 한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이후 한국 의료진과 호주 의료진을 한 번 더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결국 스테로이드는 나의 상태를 안정시켰고 일반의에게 스테로이드가 포함된 크림제와 복용약을 처방받고 호주에 돌아왔다. 하지만 원인을 치료한 것은 아니라 피부염은 다시 심해질 때가 있었고 처방받은 약이 떨어질 때쯤 호주 피부 전문의를 찾아갔다. 참고로 전문의에게 한번 진료받는데만 4만 5천 원을 내야 했는데 그나마 의료보험으로 50% 공제되었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 매주 찾아갔는데 그 전문의는 나의 표피 샘플까지 가져갔지만 근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결국 나는 포기했다. 


연말에 한국으로 휴가를 왔고 다시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다. 이번엔 일반의가 아닌 피부과 전문의와 진료할 수 있었고 그는 몇 가지 질문과 함께 나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한 번에 어떤 병인지 알아냈다. 화폐성 피부염인데 한번 발병하면 완치는 불가능하다. 스트레스가 많거나 피곤하거나 피부가 건조하면 더 심해지기 때문에 평생 관리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호주 의료진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라졌고 한국 의료진이 얼마나 뛰어난지 새삼 느꼈다. 


그런데 이게 나만 느끼는 것이었을까? 흥미롭게도 호주 현지인 동료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자기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어떤 친구는 구글로 리서치해서 자기가 원인을 밝혀서 갔더니 의사가 그게 맞는 것 같다며 처방해줬다고 했다. 

구글보다 못한 전문의라니! 

AI시대에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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