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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an 18. 2024

사북

기대: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림.

전날 따뜻한 저녁 식사 후, 한적한 한섬 해변을 거닐며 홀로 밤산책을 즐겼지만 이대로 동해를 떠나기는 조금 아쉬웠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황금박쥐동굴이 있다고 했다. 석회동굴은 몇 번 가봤기 때문에 특별히 기대되지는 않았지만,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있는 데다가 다른 동굴들과 달리 시내에 있다는 점이 특이해서 한번 가보기로 했다. 동굴로 가는 길에 마침 유명한 동해제빵소가 있어 그곳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기로 했다. 깔끔한 외관과 '셰프의 100-1 = 99가 아니라 0'이라는 제빵소의 멋진 철학이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어서 처음부터 신뢰감을 주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빵을 맛볼 수 있는 기대가 있었지만 보관할 곳도 없고 혼자 먹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고르겠다는 자세로 천천히 고민하며 빵 2개를 골랐다. 배고픔에 당장 한 입 베어 먹고 싶었지만 따뜻한 커피와 함께 조화를 이룰 달콤한 맛을 고대하며 커피가 나오길 기다렸다. 커피 한 모금을 넘기며 고구마 빵을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그 모든 기대감은 바사삭 부스러졌다. 바짝 말라서 건조한 겉면, 오묘한 향의 자색 파우더와 차가우면서 뭔가 어색하여 어울리지 않는 고구마 필링은 빠르게 이 역한 맛을 씻어낼 수 있는 커피를 불렀다. 경쟁이 심한 한국인지라 한국의 평균 맛 수준이 높아서 어딜 가도 딱히 맛없다고 느꼈던 곳은 없었는데 이 빵은 참 맛이 없어서 놀랐다. 그러나 음식을 버릴 수는 없어서 커피의 도움을 받으며 억지로 욱여넣고 두 번째 빵은 아주 많이 허기질 때를 위해 배낭에 넣었다.  

햇빛이 예쁘게 들어오는 멋진 철학이 쓰인 빵집
실체를 숨기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고구마빵

동네 공원 같아 보이는 황금박쥐동굴은 입구가 넓고 천장이 높아 보였는데도 헬멧을 쓰고 입장해야 했다. 무서우리만큼 고요한 동굴 안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내 발소리만 가득했다. 20대 초반 친구들과 배낭여행 중 갔던 석회동굴에선 여름휴가철 관광객들과 뒤섞여 좁은 길을 일정한 속도로 걸으며 제대로 둘러보지 못해서인지 비좁고 답답했던 터널 같은 길만 뚜렷이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천장에서 바닥을 향해 뾰족하게 침투하는 수많은 어린 종유석들과 수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다는 굵고 뭉툭한 종유석들, 그것들을 비추는 노란색 조명으로 생기는 명암, 그리고 이 넓은 곳에 혼자라는 생각에 오싹하면서도 신비로웠다. 동굴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길은 구석구석 뻗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이 동굴은 누군가의 피난처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어둡고 추웠겠지만 공간이 넓어서 식수도 제공해 주는 꽤 괜찮은 피난처였을 수 있겠다 등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여유롭게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수만 년에 걸쳐 석주 하나가 완성되는데 5cm만 자라면 석주가 되는 석순이 하나 있었는데 앞으로 200-300년을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겨우 5cm일 뿐인데 적어도 2세기가 지나야 한다는 사실에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고 있는 동굴의 생명력이 감탄스러웠다. 마지막에 '저승굴'에 들어갔는데 입구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점점 천장이 낮아져 몸을 잔뜩 웅크리고 걸어야 했는데 서로 멀리 떨어진 조명은 센서로 작동하여 지나갈 때 아주 잠시 작은 불빛만 비춰주어 금세 어두워졌다. 핸드폰의 플래시에 의존하여 허리를 숙여 걸어가는데 이 어둠 속에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듣지 못하는 곳에 나 혼자 있다는 생각에 온몸이 오싹해졌다. 좀 더 빨리 걷고 싶어도 좁은 공간 때문에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어서 '저승굴'이라는 이름이 더욱더 찰떡같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발을 부지런히 옮기다 보니 길게 느껴졌던 저승굴의 끝이 보이고 익숙한 노란색 조명이 보였다.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걷다 보니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중년 여성 두 분이 동굴 안을 둘러보시며 도란도란 말씀을 나누시는 모습을 보니 동굴의 차가운 온도와 저승굴에서 가져온 오싹함으로 인한 긴장감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황금박쥐동굴로 들어가는 입구
뾰족 뾰족 겨울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 같은 어린 종유석들

어둡고 습한 동굴과 달리 바깥의 공기는 햇빛과 뒤섞여 더욱 상쾌했다. 동굴 안에 들어가기 전 평범하게 느껴졌던 뒤쪽 공원이 이제는 특별하게 보여 카르스트 지형을 둘러보고 싶어졌다. 언덕 위 공원은 파란 하늘 아래 빨간색, 노란색 가을빛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가을 풍경을 눈에 담고 있는데 어디선가 재잘거리는 귀여운 목소리들이 들렸다. 두 명씩 손잡은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다. 모두들 나무 앞에 멈춰 서더니, 선생님이 소리 내어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가을 풍경 안에 담긴 한 방향으로 서서 고개를 들고 있는 꼬마들이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이 다음 나무를 찾아 선생님과 떠나 조잘조잘하는 아이들 목소리가 사라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랑스러운 꼬마들을 만났던 공원 벤치

기차 타기 전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어제저녁 가지 못했던 중식집으로 향했다. 맛집답게 입구는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나무의자가 옹기종기 줄 서 있는데, 전통적인 중국집과는 다르게 'Good day Chinese Food!'라고 쓰인 유리문으로 앤티크한 스테인글라스 조명과 아기자기한 피규어들이 얼핏 보였다. 늦은 점심시간이라 다행히 식당은 절반 정도 채워져 있었다. 노란 은행나무 뒤로 하늘이 보이는 창가 옆에 앉아 다른 테이블 위의 음식들을 살펴보았다. 암만 생각해도 남을 게 뻔했지만 가장 유명하다는 레몬 탕수육을 안 시킬 수가 없어서 볶음 짬뽕과 탕수육을 시켰다. 막 튀겨서 살며시 연기가 올라오는 돼지고기 튀김 위로 향긋한 레몬향이 올라와 내 코끝을 찔렀다. 새콤달콤한 향에 입안에 침이 잔뜩 고였다. 탕수육을 하나 집어 그릇 바닥에 고인 소스를 더 묻혀서 입안에 넣었다. 레몬의 상큼함이 달달한 소스와 어울려 입안에 퍼지는 맛은 좋았지만 '맛집'으로 유명해질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곧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볶음 짬뽕이 나왔다. 달콤한 탕수육의 맛을 중화시킬 매콤한 짬뽕을 입안 가득 채울 생각에 젓가락으로 면을 돌돌 말아서 한 입에 넣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지? 알싸하게 내 혀를 자극할 것 같았던 짬뽕은 맵지도 않고 싱거운, 탱글탱글한 식감 좋은 오징어와 신선한 채소의 아삭함이 살아있는 건강한 맛이었다. 중식집에서 건강한 맛이라니... 아주 자극적이지만 맛있는 점심을 먹겠다는 계획은 무너져버렸다. 좋은 맛이었지만 내게 또 갈 집은 아닌 곳이었다. 결국 포장하면 퉁퉁 불어버릴 짬뽕으로 배를 채우고, 남은 탕수육은 포장하여 나왔다. 

중식당 창 밖으로 보이는 예쁜 가을 풍경
예쁜 그릇에 담긴 레몬 탕수육과 볶음 짬뽕

민둥산역 근처 숙소는 찾기 어려워 태백선을 타고 사북역으로 향했다. 민둥산역 바로 옆이라 사북에 숙소를 잡았는데, 생소한 이름처럼 조그마한 역에 내리는 승객도 거의 없었다. 내리자마자 찬바람이 얼굴을 마구 때렸다. 조금 전까지 동해의 가을볕이 붉어졌던 얼굴은 매서운 바람에 새빨개졌다. 저렴한 가격이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숙소는 멋진 인테리어와 온기가 가득해 얼었던 몸이 사르르 기분 좋게 녹았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한적한 사북역

육체적 피로에 대한 보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부러 검색하여 갔던 빵집과 중식당에선 소소한 실망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석회동굴에선 감탄을 하고, 사북의 숙소에선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기대'는 이렇게 감정에 장난을 부린다. 냥 지나가는 길에 마침 식당이 보여서 배고픔을 달래려고 점심을 먹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레몬 탕수육이라는 독특한 메뉴와 재료의 신선함이 살아있는 짬뽕에 반해 아주 만족스러운 끼니였다고 기억했을지 모를 일이다. 


중요한 대상일수록 기대감이 무너졌을 때의 실망감이 크다. 그래서 '기대'에게 놀아나지 말라고 나를 다그쳤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 꾸준히 나는 '기대'가 문틈으로 살금살금 들어올 때마다 세차게 몰아냈다. 성실하게 훈련시켰더니 감정도 근육이 생겨 점점 무뎌지었다. 


실망에 대한 두려움으로 애쓴 결과는 좋은 것이었을까, 아니었을까?

기대감을 쫓아내는 노력은 어떤 대상도 너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게 하는, 감정을 뭉툭하게 만드는 훈련과 같았다. 순전히 감정 훈련만으로 기대감이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며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반복이 주는 피로도로 인해 설렘이 점점 줄었을 텐데 감정 훈련이 가속도를 붙였을게다

새해도, 내일도 기대되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친구와 함께 하는 몇 년 만의 여행에도 설렘은 없었다. 

기대가 사라진 인생은, 혼자 눅눅하고 식어버린 탕수육을 저녁으로 먹고 있는 내 모습처럼 참 쓸쓸하다. 

종알종알 떠들며 선생님 말씀을 듣던 귀여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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