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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하는 콧날 Mar 21. 2018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기록 #6

높고 높은 남체 시장에서 새로운 동료를 만나다. 

새 아침에 밝았다. 오늘은 남체 바잘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산행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트레킹을 하면서 정신이 맑아 좋았다. 대자연 속에 있기 때문이다. 대자연은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눈으로 보는 것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음을 항상 아쉽게 한다. 

이 때문일까 여행 중에서도 가장 좋았을 때는 트레킹을 할 때였다. 네팔 트레킹을 하기 전 중국의 호도협, 메리설산을 트레킹 했다. 힘들었지만 모두 명산이었고 대자연을 느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가슴이 아렸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생각보다 길이 좋았다. 경사도 크게 심하지 않았다. 경사가 심한 건 한국산이 제일 심한 것 같다. 그리고 이곳 네팔의 산은 한국과는 다르게 포터도 짐을 옮겨야 하고 말과 가축들도 짐을 옮겨야 한다. 산속의 로지와 마을들의 물류시스템은 오로지 인편과 말등 가축이다. 하루 품삯이 말보다 사람이 더 싸다는 말을 듣고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이 곳은 그런 곳이다. 내가 자란 환경, 경험은 여기서 적용되지 않는다. 힘들지만 도로가 없고 대형 할인마트가 없는 이곳에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게 나와 다름을 알아간다는 것, 내 안에 나름 잘났다고 여겼던 것들이 통용되지 않는 것,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 것, 그것 들이 여행에서 얻어갈 수 있는 중요한 가치들이었다. 

메리설산도 그리고 이곳 히말라야에서도 빙하 물이 흐른다. 빙하 물 때문인지 물은 에메랄드 빛이었다. 이때쯤 우리가 가는 베이스캠프에 가면 수만 년 된 빙하를 볼 수 있다고 들었다. 빙하 물이 흐르고 전기, 자동차, 엘리베이터, 어느샌가 인간의 필수 요소들인 문명의 혜택은 깊은 산속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나는 그런 오지에 있었다. 불편함 늘리니 대자연을 느낄 수가 있었고 나는 모험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가보지 않았던 곳, 경험하지 않았던 것, 수많은 새로움 속에서 말이다. 분명한 하나의 질량은 변함이 없는데  어떤 것을 줄이고 어떤 것을 늘리느냐에 따라 생과 시간은 수만 가지의 형태로 변화한다. 앞 문장을 여행에 대입해본다면 여행의 묘미는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내일 무슨 일 생길지 모르는다는 기대감과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면 여행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행에서 돌아온 나도 인생을 여행처럼 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알고 있다는 것"이 여행에서 변한 삶의 태도 중 하나이다. 

땅은 모래알처럼 퍼석했고 이따금 씩 돌덩어리 위를 걸어야 했지만 모험은 계속됐다. 그 시간 속에 있던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주인공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시간과 주인공 자리를 뺏지 못했다. 고산의 뜨거운 태양 빛 아래 얼굴을 타들어 갔지만 마음은 기름때가 씻기듯 지워졌다.

둘 쨰날에는 이런 봉우리 양쪽에 지어진 철교를 많이 건넜다. 중간에 다른 길로 들어서 동떨어진 철교를 지나다 진 감독님이 소리쳐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좁은 외길이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살아갈 그 좁은 길 위를 혼자 걸어도 그 길 밖에서 누군가 소리쳐주고 손 흔들어 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하는 기도를 해본다. 물론 벌써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감사하다. 그 사람들을 잃지 않기를^^

그 마음을 담아 사진에 보이는 오색 깃발 타르초에 빌어본다. 타르초의 의미는 찾아보니 바람을 타고 진리가 퍼져 중생들이 해탈하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고 한다. 신성한 것이라 바람에 닳아 사라질 때까지 놓아둔다고 한다. 티베트 불교의 풍습인 것 같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티베트에서 가까웠던 중국 샹그릴라, 메리 설산에서도 보았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들이 여행을 떠났던 내 마음, 바람 잦을 날 없었던 내 마음, 여행이 주는 설렘, 두려움 나를 들었놓았다 하는 마음 같은 것들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산은 점점 깊어져 갔고, 나 자신도 깊어져 갔다." 그 깊어짐이 성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명한 남체 바자르 남체 시장에 도착했다. 오늘도 많이 걷지는 않았다. 약 3시간 정도를 걸었던 것 같다. 고산이니 하루 만에 고도를 많이 올려버리면 고산병이 온다. 고산병은 정말 무서운 병이다.


남체에 도착해서도 평화로운 시간들을 보냈다. 이 첩첩산중에 이 높은 곳에 많은 것을 파는 시장이 형성되어있었다. 시장이 있는 만큼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남체에서도 나는 평화로운 시간들을 보냈다. 

로지에 짐을 풀고 진 감독님과 시장 곳곳을 구경했다. 해발 3400m 고지에 이렇게 큰 시장과 마을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진 감독님이 여기서도 좋은 트레킹 장비를 싸게 살 수 있다고 마음이 드는 것이 있다면 사라고 하셨다. 여기저기 구경하다 고산에서는 머리 보온이 중요하다고 해서 따듯해 보이는 비니 모자를 샀다.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이 없는데 집에 가서 모자가 있는지 찾아보아야겠다. 남체라고 쓰여있는 회색 모자가 나는 썩 마음에 들었다. 

트레킹 중에는 씻을 수 없었다. 진 감독님이 고산병이 원인이 된다고  머리나 몸에 물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자원이 귀한 고산에서 물 또한 귀중한 자원이었다. 씻을 물을 구하려면 꽤 비용을 지불하여야 했다. 씻지 못하는 건 지리산 종주 트레킹 때도 비슷했다. 그만큼 산은 오지는, 불편한 곳이다. 그렇지만 불편한만큼 또 얻어가는 것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트레킹 중 내 사진은 갈수록 꾀죄죄 해지는데 아직까진 괜찮다.

롯지앞.


쇼핑을 마치고 진 감독님과 숙소 근처 카페에 차를 마시러 갔다. 이때 카페에서 본 해무 참 멋 졌다. 

분위기를 내려고 뒷모습도 한컷 찍었다. 

카페 밖 풍경을 찍다 포터가 카메라에 담겼다. 저럼 식품 같은 것을 나르는 포터는 관광객의 짐을 들어주는 포터는 아니다. 이 높은 산골 인력으로 돌아가는 물류 운반 시스템의 일원이다. 포터는 쉴 때 저렇게 어느 정도 턱이 있는 곳에 짐을 걸쳐 쉰다. 짐을 잘 내려놓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혼자서 다시 멜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무게이기 때문이다. 내가 찍어온 네팔 사진 속 포터를 볼 때마다. 삶의 무게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포터는 대단하다. 생계를 위해 저 무거운 짐들을 버티면서 운반하니까 말이다. 어디서든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대단하다. "그러니 당신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마세요!


카페에서 또 나는 귀인을 만났다. 새로운 동료를 만났다. 바로 약사 선생님이다. 누가 봐도 한국분이시길래 자연스레 말이 오고 갔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분이 아니셨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 미국으로 유학 가서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하고 미국에서 약사를 하시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고 혼자서 포터를 구해서 오신 약사 선생님도 같이 동행을 하기로 했다. 숙소가 달랐던 우리는 내일 아침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 숙소로 돌아가니 또 한 분의 한국인이 계셨다. 김 선생님이셨다. 김 선생님 또 한 혼자 오셨는데 가이드와 포터 두 사람을 고용하여 오셨다. 두 사람이나 고용한 이유는 김 선생님의 젊어서 활동했던 대학 산악 동아리 OB팀이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캠프를 설치했고, 원정팀의 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가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의 목적지는 에베레스트가 아니다. 에베레스트는 훈련받은 사람 많이 오를 수 있다. 나의 목적지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베레스트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캠프를 차리고 준비하는 곳)와 칼라파트라(5550M)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김 선생님의 팀들은 실제로 에베레스트 8848M 정상에 오르시는 거였다. 진 감독님과 김 선생님의 대화를 듣고 에베레스트 오르는 길에 미쳐 거두지 못한 시체들이 즐비해있다는 말을 들었다. 고산에서 죽은 시체를 수습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당시 마음이 착잡했다. 참 자연과 사람은 알다 가다 모르는 것 같다. 


김 선생님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라는 목적지가 같아 동행하기로 했다. 이렇게 동료 두 명이 늘어났고 각 동료들의 포터까지 포함하면 총 8명의 베이스캠프 원정대가 꾸려지게 되었다.


선생님들의 여러 말씀을 들으며 또 진 감독님이 제공해주신 한식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저때 밥맛이 정말 좋았었다. 다시 한번 그 맛 또한 느낄 수 있다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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