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랜턴 Aug 20. 2024

냉장고가 깻잎으로 꽉 찼다.

텃밭을 재개발해야 하나

텃밭에 깻잎이 지천인데 나눠먹을 사람이 없다. 옆집 다니엘 아저씨는 깻잎 알레르기가 있다고 일전에 말한 적이 있어서 줄 수도 없고, 또 다른 옆집 엘렌 할머니는 요즘 어딜 다니는지 당최 얼굴 볼 틈이 없다. 그렇다고 집집마다 문 두드리며 '깻잎 좀 드실라우?' 할 수도 없고.


유일하게 나눠주는 딸네는 벌써 깻잎김치 담아서 한차례 먹은 뒤다. 곧바로 뒤이어 한국에서 깻잎 장아찌를 보내왔다고도 했다. 브랜드 장인의 깊은 손맛을 본 터라 이제 무엇을 만들어 보낸 들 어설픈 내 손맛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리하여 잠시 손을 놓고 있다 보니 깻잎이 날로 무성해진다.



깻잎을 한 장 한 장 따다 보면 콧속으로 고소한 냄새가 스며든다. 아~ 참기름 냄새.

조금 지나면 꽃이 나올 것이고 그러고 나면 참깨인지 들깨인지 깨도 열릴 것이다.


저 깻잎은 심지도 않았는데 먼저 있던 것에서 씨가 떨어져 해마다 저절로 올라오는 것이라 나 역시 거저먹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아무리 그런들 둘이 먹는 양에 한계가 있으며, 또 어찌 맨날 깻잎만 먹을쏘냐!


고기 구울 때 쌈으로 싸서 먹고

호박이랑 같이 채 썰어 부침개 해서 먹고

참치 넣고 싸서 김밥으로 말아먹고

된장찌개, 추어탕에도 추가로 얹어 먹고

깻잎 전은 손이 많이 가니 슬쩍 잊어 먹고,


더 이상 메뉴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이리 먹고 저리 먹고

먹고 먹고 또 먹어도

텃밭에 깻잎은 나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더 많은 잎을 날마다 키워낸다.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따서 집어넣고 따서 집어넣고 하다 보니 이번엔 냉장고에 깻잎만 지천이다. 


한국이면 앞집 뒷집 옆집 나눠도 주련만, 여기 사람들은 로메인 상추에 스테이크는 먹어도 깻잎에 삼겹살 싸 먹을 줄은 모르니 내년에는 깻잎 모두 갈아엎고 로메인 상추로 바꿔야 하나... 마음이 잠시 흔들린다.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머리부터 발 끝까지~~~





고심 끝에 비장한 메뉴 하나 떠올리고 난생처음 깻잎 장아찌 만들기 도전이다. 딸네한테 보내온 것은 매운 깻잎 장아찌인지라 그와는 차별되게 간장으로 만들어본다. 전문가 브랜드 장인과 내 맘대로 요리하는 주부라는 점이 다르긴 하다만, 도전은 내 삶의 의미 아니던가!


고질병인 '대충 요리하기' 증세에 맞춰 눈대중으로 간장:물:설탕:식초의 비율을 1:1:1:0.5로 잡아 한데 부어 끓여서 식혀놓고, 깻잎을 한 장씩 씻은 다음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마지막으로 물기 빠진 깻잎을 여러 켜 깔고 간장물 부어주고, 여러 켜 깔고 또 부어주고, 이렇게 차곡차곡하면 '깻잎 장아찌' 완성이다. 풍미를 위해 양파와 깐 마늘을 추가한다. 일주일 후에 한 번 뒤집어 주면 더욱 완벽하다.


2주 정도 지난 오늘 드디어 맛을 봤다.

우와~ 적당한 단맛에 적당한 짠맛, 거기에 화룡점정 살짝 새콤한 맛까지, 기가 막히다. 이걸 내가 했다고!


생깻잎이라 약간 질기긴 하지만 일부러 씹는 맛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며 그냥저냥 넘어가려다가,

잠깐! 나는 치아가 부실해지기 시작한 노년이니 내가 추구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 이걸 한 번 쪄야 하나? 시간이 지나면 물러질까? 이제라도 뭘 더 넣어야 하나?


제일 쉽고 간단하게 시간에게 해결하라 이르고, 곰삭아라 곰삭아라~ 주문을 건 다음 뚜껑을 덮고 냉장고에 다시 넣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질기면? 내년에 텃밭을 갈아엎으면 된다. 헤헷!


자! 이제 깻잎으로 뭘 더 해보나~







매거진의 이전글 자동차로 장거리 여행하다 골로 갈 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