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 내 선택에 자신이 없다.
나이 먹는다는 걸 정말 생생하게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
나의 경우는 판단력이 흐려질 때이다. 오십 중반에 갱년기를 겪고 난 후 내 판단력에 대한 자신감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더 나은 선택이나 최선의 선택을 했는가 보다는, 과연 옳은 결정을 한 것인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수시로 올라오며 선택에 자신이 없어진다. 정신의 총명함을 지켜내며 분별하고 분석하는 것이 힘이 드니 선택의 순간마다 스트레스가 따라붙고, 스트레스로 인해 옳은 결정인가에 대한 확신은 더욱 멀어진다.
슬며시 선택권을 남편에게 떠넘겨보지만 종종 지갑과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가는 네 살 연상의 남편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며 선택권을 다시 내게로 돌려놓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과 출산, 아이들 교육 등 살면서 소소하고 커다란 거의 모든 것을 주로 혼자 고민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해왔는데, 이제부터는 누가 나 대신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줬으면 좋겠을 만큼 사고와 분석이 힘에 겹다.
이민 초기, 영어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버벅대는 문법으로 학교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고, 집주인을 만나고, 씩씩하게 관공서를 찾아가며 적응해 나갔던, 그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보다 아주 조금 나아진 나에 비해, 아이들의 영어실력은 부쩍 늘었지만, 그래도 유창한 영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앞세우지 않았다. 아이들은 아직 어렸고, 나는 아이들의 부모이며 보호자였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사고와 분석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나의 선택이 모두 최선은 아니었고,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닐 테지만 그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따르는 책임도 자신 있게 수용할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는 내게 꼿꼿한 젊음의 패기가 있었고, 설령 실수한다 해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마음만 젊다. 만에 하나라도 실수하면 다시 일어날 힘과 기력과 시간도 없을뿐더러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조차 불안하다.
내 판단력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아이들을 앞세워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난다. 점점 결정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지고, 선택에 대한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가늠조차 어렵다. 그럴 때 아이들의 맑은 정신과 예리한 분석력은 든든한 기준으로 등장하며 자꾸만 나의 의존감을 키워놓는다.
나보다 현명한 아이들은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름 분석을 하고, 저들의 의견을 말하거나 명쾌한 판단을 내려준다. 내 울타리 안에 있던 아이들은 어느덧 자라서, 노년에 접어든 나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니 고맙고 든든하다. 다만, 나를 대신하여 아이들의 사고력과 분석력이 필요한 선택의 순간이 많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이 들면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하고 있는 일을 정리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늙음으로 인해 내 판단에 확신이 없어지는 불편함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짐이 될까 벌써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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