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이야기를 쓰다 보니
오전 10시도 안 됐는데 남편이 내게, 오늘 점심 뭐 먹을지를 물어본다.
예전 같으면 하릴없이 밥만 챙기는 모습이 당장 꼴 보기 싫어 뭐라 했을 텐데, 이젠 그냥 웃음이 나온다.
한동안 남편 이야기를 글로 쓰다 보니, 그리고 쓰면서 해피한 점을 찾아 마무리를 짓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운 마음보다 짠한 마음이 앞서고, 웃는 여유까지 생겨났다.
집에서 밥 먹지 말고 햄버거 하나씩 먹고 오자는 남편 말에 흔쾌히 '오케이' 했다.
전에 같으면 나가기 귀찮다거나, 패스트푸드는 싫다며 '자기 혼자 먹고 와. 난 내가 알아서 먹을게.' 했을 텐데, 이젠 한 끼 그렇게 먹을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쿠폰 챙기는 남편의 마음 씀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것도 글로 써놓지 않았으면 가볍게 지나쳤을 마음이다.
남편이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와 유튜브를 틀어놓고 동시 시청하느라 분주한 것 같지만, 내 눈에는 딱 그저 무료해 보인다. 남편에게 가서 호기롭게 외쳤다. '자! 햄버거 내기 고스톱! 오케이?'
전에 같으면 환한 대낮 금쪽같은 시간에 고스톱을 쳐! 말도 안 돼! 하며 내 일에만 열중했을 텐데, 이젠 혼자 노느라 애쓰는 모습이 신경 쓰인다.
표정이 금세 함박웃음으로 변한 남편이 당장 고스톱 실행 모드로 바뀌면서 티브이를 끄고 휴대폰을 내던지며 달려든다.
낄낄거리고 씩씩거리며 1시간을 치고 나니 남편이 딱 햄버거값만큼을 이겼다.
그런데 '내가 언제 햄버거 내기 한다 했느냐!'라며 남편 말이 달라진다. 본인은 그저 아무 대답도 안 했으며, 그것은 '노 NO!'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전에 같으면 그런 게 어딨냐며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을 나였지만, 공개적인 글로 대놓고 남편 뒷담화를 해 온 덕에 이제는 웃어넘기는 아량이 생겼다.
햄버거와 푸틴을 시켜놓고 히히거리며 남편과 콜라를 나눠 마셨다. 점심값은 물론 신용카드가 냈다.
글쓰기는 치유의 과정이라 했던가! 글을 쓰면서 내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남편에 대한 그동안의 서운함까지 포함해 내 마음이 풀어져 가나 보다.
내가 쓴 글을 통해 활자화된 남편의 모습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의 짠한 뒤태가 조금씩 드러났다.
글쓰기의 힘은, 나 혼자 부대껴왔던 내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었고, 늘 가려져왔던 남편의 외로움을 조명하여 내 눈앞에 보여줬으며, 자신의 상처만을 고집한 채 서로에게 삭막했던 우리 부부의 일상을 따스하게 일궈놓을 만큼 막강한 것이었다.
나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타인의 것처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글쓰기의 힘!
나는 앞으로도 그 힘에 계속 의지해볼 생각이다.
-그동안 저의 첫 브런치북 '쓸모 있는 남편의 짠한 뒤태'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브런치북에 대한 독자님들과 작가님들의 응원 덕분에 브런치 등록 3개월 만에 가족분야 크리에이터가 되었습니다. 거듭 감사드리며,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항상 함께 하기를 기도드립니다.
대문사진 출처 © glenncarstenspeters,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