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성찬은 아니지만 따뜻한 집밥 한 끼를 먹이는 마음
오후 3시 20분은 큰 손자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맞추기 위해 대개 1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하는데, 할 일이 많은 날은 조금 더 일찍 딸네 집으로 간다.
늘 그렇듯이 딸네 집은 가관이다. 주말을 지난 월요일은 더 심하지만 오늘은 수요일, 그나마 다행이라고 마음을 달래며 흩어져있는 물컵과 우유병을 개수대에 모아 놓는다. 아이들이 아침으로 먹고 간 접시에는 굳어진 와플과 말라버린 과일 조각들이 남겨진 채다. 벗어놓은 옷들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건조기에 아직 그대로 있는 수건들을 개켜 정리해 둔다. 그러면 1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가고, 이제부터 저녁밥 준비 시작이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받아놓은 뜨물에 된장을 풀어 배춧국을 끓인다. 집에서 가져간 간고등어를 굽고,
싹 났다고 내다 버린 감자를 다시 꺼내와 간장 물에 조렸다. 계란말이를 좋아하는 사위를 위해 오늘은 넉넉하게 계란을 푼 다음, 채 썬 파와 당근을 넣고 프라이팬에 둘둘 말아 부쳐낸다.
남편도 바쁘다. 내가 저녁밥을 짓는 사이 아래위층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침대 정리 후 청소기를 돌린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재활용을 정리한 다음, 막간을 이용해 아이스 라테를 마신다. 휴~
그러고 나면, 제일 먼저 큰 손자 놈이 꽥꽥 소리를 지르며 현관에 들어서고, 5시쯤에 딸이, 10분 후에는 사위와 작은 손자가 연달아 귀가를 한다. 이제부터 집안은 다시 생기발랄 시끌벅적 아수라장으로 들어간다.
얼른 수저를 놓고 상을 차리며, 요리해 둔 반찬을 하나씩 접시에 담아낸다. 밥을 푸고 국을 뜨고 물을 따른 다음 각자 먹기 좋은 위치에 놓아준다.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따뜻한 저녁 한 끼를 먹으며 딸과 사위와 손자들이 어깨에 달고 온 하루치의 부대낌을 말끔히 씻어내기를 소망한다.
모두가 밥을 오물거리며, 모두가 자신의 하루를 이야기하느라 손과 입이 쉴 틈이 없는 저녁 식탁!
갓 지어낸 밥과 맛있는 반찬을 먹으며 고단함을 풀고, 국 한 그릇 챙겨주며 서로의 마음에 온정을 넣어준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위와 딸, 손자들까지 3대가 모여 저녁을 먹는다. 몸에 생기가 들어가고 사랑이 들어간다. 우리 모두는 내일도 잘 지낼 것이다.
모든 게 밥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