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쥐라기

by 김하정

도서관에 가면 그 많은 책들에 압도당해서 미리부터 주눅이 들곤 한다. 그중 내가 찾고 있는 책은 극히 일부분일 테고, 죽는 날까지 이 많은 것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갈 것이 뻔해서 지레 좌절하고 만다.


그러면서도 도무지 어려운 경제 서적들과 두꺼운 철학서까지 섭렵하고 싶어지는, 지식의 허영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한다. 니체, 쇼팬하우어, 카프카, 너무 오랫동안 인용돼 와서 이제는 조금 구식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소크라테스 까지.. 겉핥기를 하다 말고 제자리에 꽂아 두기를 반복한다.


차라리 "인생이란, 큰 나무 아래서 휴~ 이마에 땀을 훔치며 잠깐 쉬었다 가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던 엄마 말씀이 더 가깝고 설득력을 갖는다. 역시 생계형 철학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위기모면하는 데는 엄마 밖에 없다.


거기에 요즘은 빅테크다 뭐다 해서 부동산, 주식, AI관련, 세계정세까지 모르면 안 될 것처럼 압박해 오니 마음쉼터로 들른 곳에서 되려 가중되고 만다. 내 무지에서 비롯된 건지 이름조차 낯선 저자들의 시, 소설, 에세이도 부지기수다. 읽다 보면 나름대로 지론들이 분명 있는데, 출간돼서 도서관에 꽂히기까지의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도 묻히기 일쑤인 책들.. 과연 몇 번이나 읽혔을까 부름을 받지 못하는 책들..


내가 끄적거리고 있는 것들은 이조차도 먼 얘기일 텐데, 내가 쓰는 이유가 비로소 궁금해졌다. 그저 누군가에게 읽히기만 하면 되는 걸까? 고목처럼 단단해서 무색해지지 않을 이유--역설적이게도 그냥 쓴다였다.

지금을 살고 있는 내 흔적들인 것이다. 꼭 남긴다는 의미보다는 태어날 때 무의미였던 것을 유의미한 것으로 채워가는 내 삶의 궤적들.. 유명세를 타지 않아도, 출간조차 되지 않아도 내가 거기에 있었음을 내가 알 수 있게 기록해 가는 것이다.


내 아이들에게 유언장으로 남기보다는 같은 시대를 공유한 적 있고, 과정과정의 그 나이 때에 '우리 엄마도 이런 꿈, 이런 고민이 있었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었네. 다시 해봐야겠다' 재정비해서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 있는 작은 지침서가 돼 주면 더욱 좋겠다는 이유가 있었다. 자주 도서관에 가는 것은 반납일이 도래하기 전에 많은 책들을 읽기 위한 루틴이기도 하지만 내게 주어진 수많은 이유를 찾기 위함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이유를..


해마다 입성하는 그 많은 박사님들도 한 분야에서 박사지 인생 전반에 걸쳐 박사는 아니듯이 자기 삶에 있어서는 투박하든 소심하든 자신만의 박사과정에 있는 셈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 적용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많은 정보 중에 취사선택해서 자기를 구축해 가는 거니까 기죽지 않기로 한다.


다 알지 못하고 간데도 뭐 대수냐 싶게 배짱만 두둑해져서 에세이, 시집 몇 권 골라 나선다. 반납일까지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몇 권씩, 또 허영이다 싶지만 미우미우, 디올백보다야 낫지 않을까? 자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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