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과 ㄹ 사이

by 김하정

'ㄴ과 ㄹ', 여느 자음과 다를 게 없지만 파장은 큽니다.

긍정과 부정을, 과정과 결과를 넘나들기 때문입니다.

ㄴ은 늙은, 망한, 흥한, 행복한, 불행한 처럼 이미 지나왔거나 거의 막바지에 와 있어서

갈등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입니다.

긍정이 됐든 부정이 됐든 받아들이고 수긍이 되는 시점입니다.

다행히 바라는 데로 수정된 것이라면 '고생 끝에 낙'처럼 안도합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서 보완하고 싶다거나 거듭나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듯

수정이 쉽지 않은 씁쓸함도 함께 합니다.

거기에 비해 'ㄹ'은 앞으로 그러할 것이라서 긍정과 부정을 아울러, 의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미래가 '창창할' 유망주였다가 자칫 관리가 소홀하면 '망할'놈이 되고 맙니다.

그나마 '망할'은 수정이 가능해서 여차하면 흥할 수 있는 기회의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망한'으로 굳어져 재건에 여지조차 없게 됩니다.

다행히 실마리를 찾아가면 '흥할'도 아닌 '흥한'으로 대반전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미래 짧으신 분"이란 말이 공분을 산 적 있습니다.

고령사회에 청년들이 부양해야 할 책임이 너무 크다는 항변이라는 것을 십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짧으신'쪽에서는 서운할 수밖에 없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이 청년들의 짐이 되지 않게 제도적 받침이 있어야겠지만, 청년들도 미래 '짧을' 것에 대비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에겐 이미 '늙은 이 아닌 '늙을'이란 말이 얼마나 무서울지..

부러 먼 얘기로 미뤄두고 싶거나 그다지 실감 나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도 힘든데 '늙을'것까지 '짧을'것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기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짧을' '늙을'은 우리 모두가 속해 있어서 역지사지 겸손을 갖고 대하면 잘 늙을 대비는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이쯤 되면 가장 첨예하다고 느꼈던 ㄴ과 ㄹ도 접점을 찾은 듯합니다.

ㄹ을 보완하다 보면 바라던 ㄴ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바람직한 과정과 결과로써 상생합니다.

가열한 희망이었다가 아슬아슬 희망 고문으로 밀려나지 않게 방치하지 않고

부단히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함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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