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의 West London

런던 동네 탐방 - 1

by Sue

Airbnb 호스트인 데보라 아주머니는 정성스러운 아침으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호텔도 아닌데 이렇게 호사스러운 아침식사라니! 깔끔하지만 화려하게 차려진 영국식 아침식사를 보니 군침이 절로 돌았다.

일단 빵이 4조각이다. 잘 토스트 된 2조각의 식빵과 2조각의 통밀브래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빵을 한 조각 집어 들고 접시 뒤쪽을 봤더니 쨈이 다섯 종류나 있었다. 블루베리, 라즈베리, 딸기, 오렌지, 살구. 게다가 버터와 피넛버터, 꿀도 있어서 모든 걸 먹자니 빵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배가 터지게 먹을 생각에 아침부터 신이 났다.

유기농 사과 주스와 함께 English Breakfast tea를 마셨다. English Breakfast tea는 머그컵 기준으로 티백을 3분 동안 우려낸 후 우유를 타서 먹으면 제일 맛있다고 사촌인 Anna가 얘기한 적이 있는데, 티알못인 나는 어떻게 우려내어도 다 맛있다. 맛있음을 느끼는 장벽이 매우 낮은 나는 거의 모든 음식에서 기쁨의 맛을 느낀다.

빵을 다 먹어갈 때쯤 시리얼과 블루베리를 가득 담은 요거트가 나왔다. 정말 정말 배가 불렀지만, 푸근하게 웃으며 더 먹으라는 데보라 아주머니의 권유를 마다할 수 없었다. 지금 여기서 점심까지 먹겠다는 의지로 모두 배에 담았다.

이 집에는 두 마리의 강아지가 함께 살고 있는데 허드슨과 벤조다.

허드슨은 덩치가 매우 큰 검은색 리트리버인데, 친화력이 엄청나다. 내가 이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꼬리를 흔들며 어딜 가든 따라오는데 너무 귀엽다. 벤조는 짙은 갈색의 닥스훈트로, 영국에서는 Sausage dog으로 불린다. 기다란 소시지를 닮아서 그렇다. 벤조는 폭신한 쿠션에 앉아서 머리에 뭘 뒤집어쓰고 있는 것을 참 좋아한다. 허드슨은 벤조보다 5배는 더 큰 덩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벤조에게 진다. 주인인 데보라 아주머니가 밖을 나가면 이렇게 거실 끄트머리에 앉아서 문을 바라보며 아주머니를 기다린다. 허드슨과 벤조를 보니 우리 집 강아지들이 보고 싶어 졌다. 나를 잊지는 않겠지...?

날씨도 좋고 배도 불러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영국에 왔을 때 내가 영국에 있다는 것이 가장 잘 실감이 날 때가 반대편으로 운전하고 있는 차들을 볼 때이다. 영국은 자동차 핸들이 오른쪽에 있어서 운전 방향이 우리와 반대다. 처음에 영국에서 운전을 했을 때는 반대 방향으로 운전하는 것이 너무 헷갈려서 내가 앉아 있는 운전석 옆에 반드시 중앙선이 있어야 한다고 계속 스스로 되뇌면서 운전을 했었다. 안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역주행을 할 것 같아서 늘 마음을 졸이며 운전했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늘 왼쪽에서 차가 오는지 확인하고 건넜었는데, 영국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꼭 오른쪽을 확인해야 한다.

이걸 매번 염두에 두고 다니기가 쉽지 않아서 영국에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늘 양쪽 모두 확인하고 건너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가끔은 낯선 룰에 나를 길들이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편한 방법을 찾게 된다.

골목을 따라 걷다가 발견한 리필 가게 (refill stations). 세제나 비누, 샴푸와 같은 공산품뿐만 아니라, 땅콩, 초콜릿, 젤리, 소스 등도 식재료도 리필이 가능하다. 서울에서도 리필숍을 간혹 보기는 했는데, 장소가 많지는 않았다. 런던에는 이런 refill station이 약 5,000개 정도 있다고 한다. 서울에는 약 70군데 정도 있는데, 이렇게 숫자로 비교해 보니 차이가 확연히 났다.

Refill stations을 이용하면 불필요한 플라스틱 포장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아서 환경에 좋은 것도 있지만, 식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살 수가 있어서 편리한 것 같다. 남은 식재료가 냉장고에서 썩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고, 가격도 더 저렴하니 일석이조다. Refill stations에 어떤 제품들이 있는지 구경해 보는 것도 마트구경만큼이나 재미가 쏠쏠한데, 자주 재미진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에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동네를 걷다가 만난 꽃밭 옆의 주유소.

주유소에 적힌 기름값을 관찰하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1리터에 얼마인거지?!

나에게 익숙한 디젤 가격을 봤을 때 157.9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157.9를 의미한다면 한화로 환산했을 때 약 28만 원이 되므로 너무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너무 궁금해서 걷다가 멈춰 서서 검색을 해봤더니 여기 표시된 금액은 펜스(p)라고 한다. 즉, 디젤 1리터는 157.9p이기 때문에 £1.579이다. 한화로 2,800원이다. 거의 두 배네.

런던은 주차장도 무지무지 비싸더니 기름값도 비싸다. 살 곳이 못된다고 생각을 했다가도, 영국의 최저 시급이 약 £11.5(약 20,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게 비싼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느끼는 게 여행자의 체감 물가와 현지인의 체감 물가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일을 하며 생활할 때 느끼는 수입과 지출의 괴리감은 여행자의 것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의문과 충격과 납득의 과정을 거쳐 런던 서쪽에 흐르는 canal을 보러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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