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헬싱키 시내 탐방.
헬싱키 시내를 걷다 보면 수많은 표지판을 마주하게 되는데 왠지 모르게 하나같이 디자인적이다. 기분 탓인가?
표지판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직관적이어야 하는데, 헬싱키에서 마주한 표지판들은 직관적이면서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사진 속 거리는 헬싱키 대성당 앞 작은 길에서 마켓이 열리는 광장과 이어지는 골목 끝이다. 마켓으로 가려면 길을 건너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없다. 건널목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표지판들이 눈에 띄었다. 인도 바닥을 공사하고 있어서 바리케이드를 세워놨는데 바리케이드에 붙은 표지판만 4개다. 노랗고 빨간 표지판들이 알록달록하다. 파아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주어서 더욱 돋보인다.
횡단보도 표지판 앞을 건너 마켓으로 갔다.
바다와 접하고 있는 Helsinki Market Square. 시즌이나 시간대에 따라서 더 많은 가게와 사람들이 있는데, 오늘은 주말 오전이라 그런지 오픈한 가게도, 사람도 적다. 이곳은 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연어수프와 요리들, 자작나무나 순록 뿔로 만든 핀란드 기념품들, 순록 가죽으로 만든 옷과 신발, 무민 캐릭터 상품, 기타 빈티지 상품들을 팔고 있다. 예전에 자작나무로 만든 컵받침을 샀었는데 향긋한 자작나무 향기가 오래도록 함께했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구매하는 기념품 중 하나는 나무로 만든 컵이다. 쿡사(Kuksa)라고 불리는 이 컵은 넓고 작은 컵으로 한쪽에는 손잡이가 달려있고, 손잡이 끝에는 어디든 매달 수 있도록 가죽고리가 달려있다. 마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캠핑컵과 비슷한 형태다. 이 컵에 얽힌 북핀란드의 사미족으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있는데, 컵을 만드는 기술과 컵은 가족 안에서 대를 이어 물려준다고 한다. 어떤 가족들은 아버지가 컵을 만들어서 아들에게 선물로 주는데, 아들이 스스로 독립하여 살 수 있게 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라고 한다. 사미족과 관련된 사실이 하나 떠오르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도날드덕이 사용하는 언어가 Sami어다. 어쩐지, 아무리 따라 해보려고 해도 하기 힘들었다.
마켓을 등지고 바다를 보면, 크고 작은 선박들이 정박해 있다. 가장 앞에 있는 작은(?) 배는 헬싱키 인근의 작고 아름다운 섬인 수오멘린나(Suomenlinna)로 가는 배다. 저 멀리 보이는 배는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로 가는 배다. 탈린까지는 배를 타면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바다와 이어지는 곳에 그 유명한 핀란드 사우나가 있다. 수영장이 함께 있는데, 뜨거운 사우나에 있다가 차가운 바다 수영장으로 퐁당! 남녀공용이다.
광장의 반대편으로 가면 바다가 이어지는데, 이곳의 바다는 지형으로 둘러싸여서 바다라기 보다는 잔잔한 호수 같다. 파도가 없어서 표면이 얼음과 눈으로 덮여있다.
주거지역으로 진입하자마자 보이는 표지판에는 공놀이 금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표지판이라 흥미로웠고, 아직도 아이들이 밖에서 공놀이를 많이 하는 문화인 것 같아 부러웠다. 차량 통행은 금지되고, 자전거는 갈 수 있다.
주거지역을 거닐다 마주친 작은 공터. 공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과 한쪽에는 누울 수 있는 벤치가 있다.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누워서 책을 읽는 걸까?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있게 디자인된 벤치가 우리 동네 공원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길 가다 또 마주친 재밌는 표지판. 공사 중 표지판은 누가 봐도 공사 중으로 보인다.
사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표지판은 위에서 두 번째에 있는 두 사람을 그린 표지판이다. 아이를 보호하고 걸으라는 의미일 텐데 보자마자 든 생각은 우습게도 누나는 동생을 챙겨서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 다 아이 같은 그림에 치마를 그려 넣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내가 누나의 위치에 있다 보니 현실이 반영된 생각인가?
골목을 걸어 나와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키가 큰 나무다. 이웃해 있는 건물만큼 키가 컸는데, 가지도 많아서 군데군데 여러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마치 새 아파트(Bird Apartment) 같다.
파스텔톤의 색상이 예쁘게 칠해진 건물들 사이를 지나서 핀란드 사람들이 가장 즐겨마시는 음료인 커피를 마시러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