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경유 중.
골목을 빠져나오자마다 눈앞에 보인 커피숍은 작은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간이 커피숍이다. 앉아서 마실 수 있는 자리는 있지만 모두 야외석이라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면서 마셔야 한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이기 때문에 기꺼이 추위를 맞서보고자 한다.
커피숍의 이름은 Tove였다. 무슨 뜻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옛 노르지 언어로 '아름다운'이라는 뜻이다. 컵도 리들도 모두 두툼한 종이로 되어 있어서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다. 커피숍 앞에는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데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의자가 추운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헬싱키에서의 남은 경유 시간이 길지 않아서 마켓을 향해 걸으며 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북유럽 답게 마켓의 요리들이 연어로 대동단결이다. 연어수프, 연어 샌드위치, 연어 스테이크, 연어구이, 연어 연어 연어 연어 온통 연어들이다. 가장 저렴했던 것이 연어수프였는데, 9유로 정도였던 것 같다. 13,000원이다. 가격대가 있지만, 추운 날씨라 수프가 절실해서 한 그릇 뚝딱했는데 너무 맛있었다.
마켓 구경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광장으로 걸어갔다. 낙엽이 모두 떨어진 잿빛 나무들 사이에 낮고 큰 화분들이 있었는데 나무 주변에 심어진 것이 대파인 줄 알았다. 정말 대파처럼 보였다. 지금 다시 봐도 대파 같다. Chat-GPT한테 이게 무엇인지 물어보니 수선화란다. 수선화인 걸 알고 봐도 대파 같다. 나름 3월 말이라 봄의 기운을 주려고 Spring onion, Green onion을 심어 놓았나 보다고 생각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래도 파릇파릇함이 추운 날씨도 봄처럼 느끼게 해 줬다.
광장 끝까지 걸어와서 마주친 스타벅스. 핀란드 사람들의 커피 소비량은 세계 top인데, 헬싱키 거리에는 스타벅스가 거의 없다. 로컬 커피숍 문화를 살리려는 도시의 전략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마셨던 Tove의 라떼도 정말 맛있었다.
조금씩 북적이기 시작한 헬싱키 시내를 뒤로하고 공항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Vantaa 공항 안에는 중고샵이 있다. 공항 안에 중고샵이라니 너무 생소하면서도 환경을 공부했던 나는 이런 시도가 반가웠다. 판매하고 있는 옷이나 액세서리의 퀄리티가 좋았다. 옷은 대부분 중고 제품이었고, 액세서리는 재활용 플라스틱이나 폐기물 소재를 활용하여 새롭게 디자인된 제품들도 많았다. 내가 산 것은 폐플라스틱에 버려진 꽃을 담아 만든 작은 머리핀. 제품을 소비할 때 그 제품을 만드는 사람의 철학이나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소비를 하게 된다. 매번 그럴 수는 없지만, 가급적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중고샵이 있지만 이 샵을 들르는 손님도 많을까 궁금했는데, 내가 매장에 머물렀던 20분 정도의 시간 동안 10명 이상의 손님들이 다녀갔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핀에어를 타고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헬싱키-런던 구간은 3시간 정도의 짧은 구간이기 때문에 식사는 제공되지 않고 음료만 제공된다. 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주스를 주문했다. 예전에는 플라스틱 컵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모두 종이컵으로 대체되었다. 종이가 환경을 전혀 해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플라스틱보다는 친환경적이다. 역시 유럽은 많은 부분에서 환경을 고려하는 시도를 이미 시작한 것 같다.
3시간을 날아 드디어 런던 상공에 도착했다. 런던에 도착은 했는데 비행기가 착륙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런던 상공을 뱅글뱅글 도는 비행기에 앉아 있자니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대체 언제 내리는 거지?
30분쯤 상공을 돌았을 때 안내 방송이 나왔다.
"We are having traffic jam"
비행기도 막힌다니!!
하늘이 이렇게 뻥 뚫려있고 근처에 날고 있는 비행기도 안 보이는데 비행기가 막혀서 착륙을 못하고 있다니. 두 귀를 의심했다.
런던 히드로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이기 때문에 이륙도 착륙도 지연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런던 상공에서 1시간을 머문 뒤에 겨우 착륙할 수 있었다. 회전목마처럼 뱅글뱅글 도는 비행기에서 내리니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6년 만에 다시 그리운 마음의 고향 런던에 돌아왔다.
Hello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