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흔들릴 때, 나를 붙드는 힘은 무엇인가
순례길을 걷는 것은
인생길을 걷는 것과 같았다.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더 고통이 따른다는 것도
인생과 닮아 있었다.
고된 하루는 위대했다.
어젯밤,
어느 순례자의 천둥마냥
쩌렁쩌렁한 코골이에도
정신을 놓고
푹 잠들었으니 말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이렇게 잘 잘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순례자의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길 위에 해가 떠오르면서
마을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둠이 깨지면서
드러내는 하늘의 자태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붉은 꽃이 물든 듯한 하늘에
마음이 동요되었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황홀한 새벽이었다.
모든 슬픔이 잠시 멎고,
세상이 새로 태어났다.
그 순간,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첫 마을인, 론세스바예스에서
약 2.5킬로 가다 보니
부르게떼 마을이 보였다.
헤밍웨이가 글을 쓰기 위해,
머물렀던 부르게떼는
황홀한 일출만큼이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마을 카페에서,
오렌지주스와 또르따로
아침 식사를 했다.
또르따는
스페인어로 파이, 케이크란 뜻이다.
순례길 카페에서 먹는 또르따는
주로 감자를 잘게 썰어 넣은 파이로,
포만감을 느끼게 해 주었고
짭짤해서 땀을 많이 흘리는 순례자에게
딱 맞는 메뉴였다.
배를 채우고 나니,
에너지가 생겨 힘차게 걸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지난 힘든 여정을
그새 잊게 하고, 지친 발걸음을
다시 길 위로 올려놓았다.
고통은 사라지고, 몸속 깊은 곳에서
잊고 있던 감각이 깨어났다.
발끝이 가벼워지고
숨결이 새벽의 공기와 하나가 되었다.
나는 다시 걸을 수 있었다.
아니, 그 풍경이 나를 앞으로 이끌었다.
까미노에는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땅, 나무, 꽃, 바람,
그리고 하늘과 같은 자연뿐만 아니라,
함께 걷는 순례자들에게서도
에너지가 느껴졌다.
자연의 숨결이 나를 일으키고
사람들의 숨결이 나를 밀어준다.
바람과 발자국이 섞이며
길은 살아 있는 존재가 되고
나는 그 안에서 걷는다.
그들의 발걸음과 숨결 속에서
길은 살아 움직였다.
지친 마음이 다시 꿈틀거리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내리막길이 나왔다.
올랐으니 내려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서,
내 발끝이 신발 끝에 닿을락 말락 했다.
다행히,
바셀린을 발가락 사이사이에 바르고
두 치수 큰 신발을 신어서
물집을 피할 수 있었다.
치수가 딱 맞는 신발은
많이 걸어 부은 발이
신발 끝에 닿으면서
물집과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에
워킹스틱이 없었다면
내가 자갈을 딛고 걸을 때,
자갈이 움직여 발목을
삐끗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틱은 내가 미끄러지지 않고
흔들리는 자갈에 중심을 잡도록,
내 몸을 고정시켜 주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수없이 흔들린다.
기대하지 않은 바람이 불고,
예상치 못한 파도가 밀려와
마음의 균형을 잃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인생에서 흔들리지 않게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그 답을
사랑에서 찾고,
어떤 사람은 신념에서 찾는다.
누군가는 가족이고,
또 누군가는 오롯이
자신을 향한 믿음이다.
나는 아직,
그 답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중심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천천히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바람이 흔들어도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그 뿌리가 남이 아닌,
나에게 닿아 있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수없이 걸음을 옮기며 깨달았다.
내 중심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 걷게 만드는 작은 마음,
그리고
'나를 잃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지 않도록
나의 중심을 향해,
오늘도 천천히 걸어간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