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가 팜플로나에 간 이유
흰 옷 위의 붉은 스카프가
불꽃처럼 흔들리고
소의 발굽이 돌을 울리면,
환호와 비명이 뒤섞인다
소의 발굽이 돌을 찢으면,
피와 포도주가 한 잔에 섞인다
칼끝 같은 뿔이 공기를 가르고
숨결은 비명으로 바뀐다
붉은 천이 흔들릴 때,
심장은 멎는다
죽음은 스쳐가고
도시는 피로 붉게 물들인다
축제는 죽음의 그림자다
토요마켓이 있는 팜플로나 도시에는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분주히
마켓 준비를 하고 있었고,
다른 마을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아침부터 카페 안에서
맥주나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나와 일행은
팜플로나 국립 알베르게 앞에 줄을 섰다.
오픈 시간인 12시 전에 갔는데,
이미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수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
이 시간에 도착하려면,
매우 일찍 출발하거나
걸음이 매우 빠르거나
나처럼 전날에 팜플로나에
도착해야 했다.
팜플로나 국립 알베르게는
규모가 크고 깨끗하고
저렴한 곳으로 유명해서
전날 팜플로나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나처럼 느리게 걷는 순례자에게
국립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순례길의 국립 알베르게 중
Top 3가 있다.
론세스바예스, 팜플로나, 부르고스이다.
론세스바예스는 예약이 가능해서
묵을 수 있었고,
팜플로나는 전날 미리 도착해서
묵을 수 있었다.
피레네 산맥의 빗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만났던 일행들을
팜플로나에서 다시 만났다.
스페인 순례길 중,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프랑스길에는
4개의 주요 지역이 있다.
나바라, 라 리오하, 카스티야 이 레온,
갈리시아가 바로 그것이다.
첫 지역, 나바라는
프랑스의 국경 마을인
생장 피드포드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온다.
주요 도시에는 론세스바예스,
팜플로나가 있다.
바로 그 도시인 팜플로나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첫 여정의 힘겨움을 달래고
팜플로나에서 유명한
타파스를 맛보러 카페에 들어갔다.
타파스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시작된 것으로
잔 안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또는 와인과 함께 먹기 위해,
와인 잔 위에
음식을 올려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은 조각빵에
치즈, 고기, 해산물, 야채 등이 얹어지며,
그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짭조름한 맛이 와인, 맥주와
조화를 이루었다.
카페 안에는,
산 페르민 축제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카페를 나오니,
거리는 그새 군중들로 붐볐다.
골목마다 울려 퍼지는
둥둥거리는 북소리와
공기를 찢으며 높이 솟구치는
날카로운 나팔소리가
서로를 몰아붙이는 듯했다.
군중들은 흥분으로 행렬의 줄을 따랐고,
행렬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북소리의 ‘둥둥’ 소리는
내 심장을 울리는 듯했고,
피로했던 몸과 마음에
기운을 불어넣어 줬다.
팜플로나 도시가
흥분으로 살아 움직였다.
토요마켓 행사로
다양한 행렬이 이어지면서,
팜플로나는 그야말로
흥분과 열정의 도시, 그 자체였다.
거리는 악기 연주와 가장행렬을 뒤따르는
아이들과 어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화려한 행렬은 까르띠요 광장에서 멈췄다.
행렬을 따르던 군중들은
일제히 광장에 몰려들었다.
까르띠요 광장 근처에는
헤밍웨이가 자주 들렸다는
카페 이루냐가 있었다.
‘이루냐’는 바스크어로 ‘
팜플로나’라는 뜻이다.
그 카페는 1888년에 오픈한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었고,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도 등장한다.
그 카페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헤밍웨이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헤밍웨이는 프랑스 내전 때
파견기자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그 이후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에서
전쟁에서의 목격했던 삶과 죽음을
접했다고 한다.
그의 첫 장편소설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는
그가 경험한 소몰이 광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산 페르민 축제'는
매년 7월 7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되는
소몰이 축제이다.
팜플로나에서는
소에 받쳐서 죽은 성인 산 페르민을
추모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축제에서 다치거나 죽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출몰했다.
시청 골목에서 빨간 운동화를 신고
흰 바지에 붉은 띠를 허리에 두르거나
빨간 스카프를 목에 휘감고
골목을 미친 듯이 달리는
축제 참가자들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면 군중에 밟히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뛸 것이다.
뿔을 앞세우고 콧김을 세게 불며,
질주하는 황소를 피해
숨이 끊어질 듯 도망치다가
황소 뿔에 내동댕이쳐진
장면이 떠올랐고,
끔찍하고 아슬아슬한 장면이 나올수록,
군중의 흥분된 함성과 고조된 분위기는
생각만 해도 심장을 조여왔다.
‘전쟁을 낱낱이 지켜본 파견 기자,
헤밍웨이는 투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앞만 보며 달리던 황소도
결국 투우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라고
생각했을까?
그 황소를 보며,
인간도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결론에 이르렀을까?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