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별자리를 만든다(순례길)

‘별들이 바람에 따라 흐르는 길’, 용서의 언덕

by 시안블루


내 마음의 감옥에
가두었던 시간들

그 열쇠를 쥐고 있었던 건
결국, 나였다

나는 오늘,
그 문을 열 것이다



푸엔테 라 레이나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모든 길이 합쳐지는 곳이다.


실제로 고국에서 출발하거나

생장 혹은 론세스바예스에서

출발하는 순례자들이


산티아고에 가기 위해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만나게 된다.

푸엔테 라 레이나의 푸엔테는

‘다리’라는 뜻이다.


여섯 개의 반원형 아치가

아르가 강 위에 비쳐 둥근 원을 이룬다.


푸엔테 라 레이나 마을에는

같은 이름의 다리가 있다.


그 다리는 여왕의 다리라고도 하는데

6개의 아치모양을 하고 있었고

강가에 비쳐 원을 만든다.


여왕이 순례자가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만들게 해서,

여왕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는 길은

메세타 고원이었다.


가을 추수가 끝난 밀밭이

황금빛으로 펼쳐져 있었고,

거대한 평원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늘은 맑았다가

그새 먹구름으로 바뀌었다.


멈춰서 한 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가도 가도 밀밭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에서,

숨이 턱에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는,


지난 세월 동안 가슴에 쌓아두었던

모든 후회와 미련처럼,

삶의 무게로 느껴졌다.


가파른 언덕길을 숨 가쁘게 오르자,

멀리서 하얀 무언가가 움직였다.


풍력발전기였다.


거대한 풍력 발전기들이

마치 바람을 가두어 놓은 듯

웅장한 소리를 내며 휘몰아쳤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

손으로 꽉 붙잡아야 했고,

모래바람에 눈이 따가웠다.


해발 770m에는,

'용서의 언덕'이 있다.


중세시대에,

죄가 있는 자들은 이 언덕에 올라

용서를 구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이 언덕에서 우리는 모두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



용서받기를 원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있는 곳,


그 용서의 언덕에는 서쪽으로 걸어가는

철제 순례자 조형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평생 모든 것을 용서하거나

용서받고 살지 못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는다.


거미줄처럼 가늘고 약한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거미줄에

상대방 혹은 자신을 가둔다.


여전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한때,

자신을 탓하고 타인을 원망하던

모든 무거운 마음이,


바람에 실려

흩어져 가길 바랐다.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언덕 아래로 이어진 자갈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테르가 마을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잔인했다.


바람은 여전히 거셌고, 발밑은 불안했다.


돌멩이들이 구르며 미끄러졌고,
한 걸음마다 발목과 무릎이 충격을 받았다.


크고 작은 돌멩이와

불안정하게 구르는 자갈이 뒤섞인 길은,


걷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지며 버티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오르막에서 쌓인 피로가

내리막의 충격과 더해져,


무릎과 발목의 통증으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단단히 묶은 등산화 속에서도

발가락은 앞으로 쏠리며 짓눌려

발끝이 아팠다.


그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스틱을 짚고 균형을 잡는 데

초집중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 절망적인 고통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얻고

별들의 길을 향해 걷는 곳,


바로 그것이 용서의 언덕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짐을 지고 산다.


후회와 미련,

그리고 현실의 무게가 쌓여
자신조차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을 만든다.


그러나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용서의 언덕을 오를 때,

숨은 돌처럼 무거워지고

세찬 바람이 불어올 때,

지난 삶의 흔적이 모두 흔들린다.


내리막길의 자갈 위에서

몸은 고통을 배우고,

마음은 비워지는 법을 배운다.


길을 걷는 것은,


어제보다 덜 아픈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을 얻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내면의 여정이다.


바람의 길이 별의 길과
교차하는 곳,

'용서의 언덕'

별빛은,
고통을 통과한 이의
마음 위에서만,

비로소 빛난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별자리를 만든다(순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