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지나야 비로소, 빛을 만난다
가장 깊은 밤을 건너야
새벽은 찾아온다
어둠은 나를 삼키지만
나는 그 속에서
빛을 낳는다
스페인의 태양은 걷는 내내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정오 12시가 되면 걷기 힘들 정도로
태양빛이 이글거렸다.
낮 온도는 찌는 듯이 더웠고,
여름의 열기가 9월 초까지 이어졌다.
지쳤다 싶으면 납작 복숭아와
물을 먹으면서 잠시 쉬어갔다.
쉬는 동안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의 땀과 온도를 식히며,
발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실제로 양말을 벗고
다리 마사지를 해주는 것은
발의 붓기와 열기를 빼주어
물집을 예방할 수 있었다.
발이 부으면 발끝이
신발 끝에 닿으면서
발끝에 물집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제 푸엔테 라 레이나의
가파른 내리막에서 물집이
생기지 않았던 것은 그 덕분이리라.
푸엔테 레 레이나를 벗어나
시라우끼 마을에 다다르니,
올리브나무가 있는 곳 앞에
푸드트럭이 보였다.
과일과 차, 빵 등이 준비되어 있는
푸드트럭에 기부금을 내고
수박 한 조각을 들었다.
한 입 베어문 수박은
타는 듯한 땡볕 아래,
터벅터벅 걷던
나의 갈증과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잠깐 쉬는 동안,
올리브 나무의 오묘한 색과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은빛을 머금은 초록은 싱그러움 보다는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키 작은 나무에
여기저기 뻗은 가지들과 잎들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있어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 주었고,
땀으로 범벅이 되고 지친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고흐는 정신병원 정원을 벗어나
생레미 언덕과 올리브 숲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고흐에게 올리브 나무는
삶의 상처 속에서도
다시 살아나는 생명력과
영혼의 치유를 의미했다.
잘려나간 가지에서 새순이 돋듯
그는 자신의 고통과 광기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몸부림을
그림 '올리브 나무'에 담았을까?
시라우끼에서 에스떼야를 향해
걷다 보니, 돌아치 터널이 있었다.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돌 아치 터널은
단순히 길을 잇는 통로가 아니라,
마치 어둠과 빛 사이의 경계선 혹은,
나의 과거와 미래가 한 지점에서
만나는 문턱 같았다.
그 속은 마치 세상의 끝처럼 고요했다.
숨을 죽이며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저 멀리 보이는 빛 한 조각이,
나를 부르는 별빛처럼
흔들리며 반짝였다.
그 문턱을 넘자,
두려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발걸음이 새처럼 가벼워졌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찬란한 햇살 아래로 펼쳐진 순례길이
빛의 강처럼 흘렀다.
'어둠을 지나야
비로소 빛을 만난다는 것'을,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안의 상처와 두려움 또한
언젠가,
저 빛 속으로 스며,
저 멀리
흘러가리라는 것을.
“어둠은 잠시였고,
빛은 언제나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