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별자리를 만든다(순례길)

느림의 미학

by 시안블루


느리게 걷기는,
세상이 잊어버린 호흡을
되찾는 일

한 걸음마다,
내 마음의 그림자가
제자리를 찾고

잠시 멈춘 그 틈에서,
비로소 내가 나를 듣게 된다




타르다호스를 지나

카스트로헤리스로 향하는

메세타 고원의 초입에는,

'위대한 사상가들' 벽화가 있었다.


광활하고 황량한 메세타 지역은

순례자들이 가장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구간들 중 하나이다.


그 벽화는


힘든 여정 중 잠시 멈춰 서서,

인생과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내게 영감을 주었다.





빛이 들판 위에 스며들고,

길은 조용히 먼 곳으로 이어졌다.


낡은 표지석 위의 가리비 문양이

바람에 닳은 신발처럼 고요했다.


순례길에 놓여 있는 낡은 신발은
그저 버려진 물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지나온 고통과 선택의

흔적이었다.


밑창이 닳고 가죽이 터진 자리마다,


그가 견뎌낸 시간들이

조용히 새겨져 있었고,


그 신발을 벗어놓은 순간,


그 사람이 오래 붙들고 있던 짐을
비로소 내려놓은 것이었다.


이 길을 걸은 이들의 숨결이,

아직도 풀잎 사이에서 쉬고 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벗어놓고,

어떤 나로 다시 걸어가고 있는가.”





'느림'이라는 말은 묘하게 들린다.


알베르게에 빠르게 도착해야 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니 마음이 평온해졌고,

자연과 호흡하며 걸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걸으면서 내 몸의 감각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


'느리게 걷는 것'은

세상을 섬세하게 보고 느끼는,

사유하는 움직임이다.


'느림'은

세상의 즐거운 '틈'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걷는 것에 집중하니,

내 피부 솜털 하나의 느낌까지 섬세하게

감각적으로 닿았다.


내면에 집중하니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타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 내면의 빈자리에 스며든 건
누구의 가르침도 아닌,
길이 내게 돌려준 나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깨달았다.


이 여정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은,


어떤 목적지가 아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을

찾게 해 준 것이라는 사실을.



느리게 걸어라.

고요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만 집중할 때,

내면의 참된 해방을
맛볼 수 있다.




"오늘밤,

당신의 마음에

별 하나,

놓고 갑니다."


[시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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